'꼬여도 너무 꼬였다.'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산 밑에 덩그러니 서있는 청도 상설 소싸움경기장. 이를 볼 때마다 울화통이 치민다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그다지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개장에 이르기까지는 '첩첩산중'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파행 경영을 해온 민간사업자인 (주)한국우사회의 정상화는 물론이고 개장 자금 확보, 중앙 관계부처의 승인, 한국우사회와 경기시행사인 청도공영사업공사간 위·수탁 계약 등등...
이때문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641억 원을 들여 올 1월 경기장을 완공해놓고도 개장이 어려운 것은 '애초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막무가내'식 행정의 산물?
개장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일단 하고 보자'식의 행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았는데도 청도군이 독단적으로 업자와 계약을 맺고 공사를 밀어붙인 흔적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청도군이 상설소싸움경기장을 처음 검토한 것은 지난 1995년. 청도 소싸움축제가 전국에 알려지면서 이를 상설화하자는 논의가 오갔고, 처음에는 입장료 수입을 올려보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예산 96억8천만 원에 좌석 6천석 남짓의 개방형 경기장이 구상됐다.
그러나 청도군은 1999년 부산의 동성종합건설을 민간 사업시행자로 선정한 후 경기장 규모를 늘리는 것으로 갑작스레 방침을 바꿨다. 동성종건 측이 소규모 경기장으론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620억원으로 돔 경기장을 건설하고 갬블(도박)사업을 하자고 제안했고, 김상순 전 군수가 이를 받아들였다. 군 관계자는 "당시에는 김 전 군수의 결정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청도군은 국비신청을 골자로 하는 사업변경 신청서를 냈다가 경북도가 이를 반려하자, 동성종건 대표 강모씨와 합의해 사업을 강행하는 무리수를 뒀다. 당초 예산으로 공사를 시작하되, 예산 증액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동성종건이 나머지 건설비를 부담키로 하고 지난 2000년 첫삽을 떴다. 그러나 예산은 더이상 따낼 수 없었고 동성종건이 설립한 별도법인이 나머지 건설비를 조달했다. 그 법인이 현재의 한국우사회다. 결국 국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건설하고 운영해야 할 '갬블 경기장'을 민간업자가 떠맡음으로써 불행(?)의 단초가 된 셈이다.
■의혹투성이 사업
공사 시작부터 완공때까지 특혜, 뇌물수수, 주식 취득 등 각종 의혹이 끊임없이 불거졌다. 군 관계자는 "경기장 건설, 법인 설립·운영 문제에 대해 김 전군수, 업자 A씨, 동성종건 대표 강씨 등이 따로 만나 결정하는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 이때문에 주위에서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경기장 입지는 교통 편의성 때문에 용암온천 관광단지로 결정됐다. 공교롭게도 그곳에는 업자 A씨가 소유한 땅이 많았다. 취재팀이 입수한 청도군의 용암온천 관광단지 조성계획안(일대 28만 평에 소싸움경기장, 온천, 호텔, 콘도 등을 건설하려는 계획)에 따르면 단지내에 A씨의 땅은 5만384㎡(1만5천240평)이었고 온천공도 여러곳 있었다. 부동산 관계자는 "요즘은 토지 거래가 거의 없지만 소싸움 경기장 인근의 땅값은 ㎡당 10~20만원 선 사이에 호가 돼 예전보다 10배 이상 올랐다."고 했다.
또 A씨는 소유하고 있던 우사회 지분을 팔아 상당한 이득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 B씨는 "2002년 국회에서 우권법이 통과되면서 액면가 500원의 주식이 한때 5천원 이상 거래되기도 했는데 그때 A씨로부터 상당수 주식이 흘러나왔다."고 했다.
김 전 군수는 동성종건에서 1천700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강 대표는 공사비 64억 원을 부풀려 청구한 혐의(배임)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한 관계자는 "이런 배경 때문인지 소싸움경기장 주변에는 늘 '한탕'을 노리고 달려드는 사람들로 들끓었다."고 꼬집었다.
■소싸움 갬블의 한계는?
소싸움 갬블사업은 기대와 달리 처음부터 상당한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공사·공단에서 운영하는 경마, 경륜, 경정과는 달리 민간자본이 경기장을 지었기 때문이다.
2002년 국회를 통과한 '전통 소싸움경기에 관한 법률'에는 소싸움 시행자를 지차체와 지방공사·공단에 한해 인정하고 민간에서 관여할 수 있는 범위를 시설 관리, 우권 판매 및 입장료 징수 등으로 한정했다. 민간에게 도박업을 직접 맡길수 없다는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또 민간에 업무를 위탁 하더라도 실비만 지급하라는 유권해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 2004년 민간 참여범위를 넓히려고 일부 국회의원들이 나서 법 개정을 시도했다가 농림부의 강경입장에 막혀 포기했다. 전북 정읍시가 당초 민간자본을 유치해 소싸움장을 건립하려다 포기한 것도 이때문이다. 청도군이 정부 방침이나 관련 법률을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는채 민간에게 대규모 경기장을 짓게 하고 도박사업에 뛰어든 것은 한편의 희극을 방불케할 정도다. 또 경기장 공사를 이미 시작해놓고 우권법 제정에 나선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지금도 군은 민간자본을 끌어다놓고 투자금 회수방안은 마련해주지 않은채 우사회의 파행적인 경영만 탓하며 수수방관하고 있다.
한국우사회 관계자는 "경기장 건설에 550억원을 투자하고도 용역회사 수준에 머무는 단순 수탁자가 된다면 민간을 상대로 정부·청도군이 사기를 치는 꼴"이라고 했다. 우사회는 청도공영공사(청도군이 2003년 소싸움 시행을 위해 설립한 공사)로부터 운영권을 위탁받거나 경기장 사용료 등으로 매출액의 10%이내에서 운영경비를 보전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위·수탁계약을 포함한 사업계획안이 아직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없지만 우권법의 테두리 안에서 승인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소싸움경기장은 그냥 놔둘 수도 없고, 당장 개장하기도 어려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획탐사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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