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고속도로 통행권에 복권을 붙이면 정말 좋겠네

고속도로 통행권에 복권을 붙이면 정말 좋겠네/희망메이커·박원순·전유성·박준형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

개그맨 전유성과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낮 12시까지. 2시간 여 잠자는 시간을 빼고 그는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고, 끊임없이 얘기를 했다. "아~ 이건 아니지. 저기는 이것 보다는 저것이 좋을 텐데, 아, 글쎄 그것은 거기 보다는 저기가 좋지···." 나중에는 귀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남들과 다른 시선, 일상의 습관을 뒤집는 반전에서 그가 얼마나 세상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넘치는 지 엿볼 수 있었다.

'고속도로 통행권에 복권을 붙이면 좋겠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고속도로 막히잖아. 짜증나지. 뻥 뚫린 버스전용차로 좋잖아. 근데 달리면 범칙금 6만원에 벌금 30점이잖아. 통행권에 복권을 붙이는 거야. 버스전용차로를 달릴 수 있는 당첨권이지. 잘 뽑으면 신나게 버스전용차로를 달릴 수 있는 거지. 재밌잖아. 어차피 인생도 복권 같은 거고. 어때?"

'남들이 비웃지 않는 아이디어는 기발한 것이 아닐 확률이 높다.' 일상 속에서 존재하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나는 것은 즐겁다. 비웃기 보다 'Why not?'(왜 안돼?)이라는 시선으로 보면 그것은 삶의 윤활유고, 유쾌한 향수이며, 세상을 이끄는 에너지가 된다.

이 책은 일반 시민들의 아이디어와 공익적 제안을 모아 현실로 바꾸는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가 내 놓은 첫 결실이다. 희망제작소는 지난 해 3월 창립한 민간연구소로 1천900여 개의 반짝이는 시민 아이디어가 모여 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의 아이디어가 공론화·현실화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초기 임산부를 배려하는 배지를 만들자는 제안, 관용차를 소형차·경차로 바꾸자는 호소, 지하철 손잡이의 높낮이를 다르게 해 모든 이들이 편하게 이용하게 하자는 의견, 은행 자동화 기기 이용시 출금 전에 고지해 달라는 아이디어 등이 그 중 하나다.

이 책에는 재미있고, 기발한 아이디어 90여 가지가 담겨 있다. 잔액이 남은 교통카드를 모아 기부 캠페인을 벌이자, 심야 좌석버스 조명을 밝게 하자,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비상벨을 설치하자, 쇼핑카트에 계산기를 부착해 충동구매를 줄이자···.

이런 시민들의 제안에 박원순 변호사와 개그맨 전유성, 박준형이 '생각 넓히기'식 아이디어 제안을 덧붙였다.

'박원순의 아이디어 스크랩'에서는 박원순 변호사가 직접 해외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세상을 바꾼 해외의 다양한 아이디어 실현 사례들과 사진 자료들을 담았고, 전유성이 제안하는 '전유성의 별별상상(別別想像)', 개그맨 '갈갈이' 박준형의 'Fun Fun Talk'는 시민들의 아이디어와는 다른 때론 유치하고, 때론 개그적이며 보통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다.

'개그맨이 지하철 안내 방송하면 어때요?' '두루마리 휴지에 천자문이나 생활영어를 인쇄하자'(전유성), '암행어사를 부활시킵시다''공사장 안내 표지판을 재미있게 하자'(박준형) 등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발한 상상력이 경쟁력이 된 시대이다. 기존의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이 독자들의 가슴 속 '장난기'를 '아이디어'로, 그리고 이를 넘어 '혁신의 기초'로 만들어주고 있다. 그러나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비범한 아이디어 찾기' 보다 더 큰 미덕이 있다. 세상을 껴 안고, 타인을 배려하는 애정이다. 여기에 생활을 즐기는 여유까지 더하니 전유성이 던진 '세상이 참 재미있네!'라는 말이 딱 맞는 책이다. 312쪽. 1만 1천800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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