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한 광역 지자체 문화재단의 사례는 성급하게 추진한 문화재단 설립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짧은 기간에 각종 규정을 제정하다 보니 다른 지자체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규정을 그대로 차용하게 되고, 이에 따라 적합하지 않은 내용도 그대로 포함됐다는 것이다.
팀 명칭을 바꾸는 조직개편이나 지원사업에 관련된 내용까지 모두 이사회 의결사항으로 규정함에 따라 융통성 있고 순발력 있는 업무추진이라는 애초 문화재단 설립 취지와는 거리가 먼 이상한 조직이 돼 버렸다. 이 지자체의 문화재단은 설립된 뒤 각종 규정과 규칙을 바꾸는 데만 2년여의 세월을 보냈다는 설명이다.
문화재단의 설립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구의 문화예술 발전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문화재단이 어떤 형태인지를 '창조'해내는 것이 더 크고 중요한 과제라는 사실은 다른 시·도 문화재단의 설립 목적과 사업내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마디로 광역 시·도 문화재단의 정형화된 형태는 없으며, 시·도마다 자기 특색에 맞게 발전시켜가고 있다. 그리고 전문가와 문화예술인 등이 바람직한 형태라고 추천할 만한 시·도 문화재단이 아직 없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대구시 관계자도 "타 시·도 문화재단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문화재단 설립이 지역문화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말을 하지만, 그 지역 문화예술인들이나 전문가들은 "문화재단 설립은 '신중해야 한다.'는 상반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이미 설립된 타 시·도 문화재단이 하고 있는 일을 보면 왜 문화재단이 꼭 필요한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가장 규모가 큰 경기문화재단(기금 1천30억 원·연간 예산 325억 원·직원 108명)의 경우 문화예술의 창작 보급과 지원, 정책개발 이외에 문화유산의 발굴 및 보존, 문화관광 전략산업, 도정홍보, 테마박물관을 비롯한 지정사업 지원 등의 업무까지 맡고 있고, 인천문화재단(기금 480억 원·연간 예산 50억 원·직원 30명)은 문화예술진흥 정책개발과 자문에다가 문화예술교육 및 연구, 문화예술분야 국내외 교류사업 등을 사업범위에 포함시켰다.
강원문화재단(기금 138억 원·연간 예산 141억 원·직원 20명)은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 문화예술관련 연구용역, 지방 향토사 연구 등이 사업내용에 들어있고, 제주문화예술재단(기금 116억 원·연간 예산 47억 원·직원 14명)도 문화유산의 발굴과 문화재연구소·조형연구소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그나마 서울문화재단(기금 970억 원·연간 예산 140억 원·직원 44명)은 문화예술창작 기반조성, 생활 속 문화예술활동 활성화, 문화예술 네트워크의 허브기능 강화, 문화도시 서울 이미지 창조 등 문화재단 본연의 역할과 임무에 충실한 느낌이다.
전문가들은 "대구문화재단이 성공적으로 설립 운영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문화재단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에 대한 지역사회의 인식 공유와 합의"라면서 "대구문화재단의 정체성과 역할이 분명하지 않으면 수많은 시행착오와 이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지역사회가 떠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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