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우 장군이 탄 말이 암컷일까 수컷일까?" 모처럼의 나들이에 신이 난 아이들에게 바람잡이 김은 수작을 시작합니다. 기습적인 질문입니다. 다들 방금 스쳐지나 온 망우장군의 동상을 제대로 보았을 리 없습니다. 배팅은 천 원부터 시작합니다. 배팅 액수가 자꾸 많아집니다. 금방 총액이 점심 값을 충당할 정도가 됩니다.
공금이 마련되었습니다. 공금은 공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껏 쓸 수 있습니다. 대구 인근에서 가장 놀만한 곳이 동촌유원지였던 시절, 각종 게임과 놀이기구들이 즐비합니다. 풍선 터뜨리기, 미니 농구, 야구공으로 블록 무너뜨리기, 홈에 당구공 넣기, 공기총사격에 오리배타기까지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자칭 게임의 황제라는 김, 게임마다 또 다시 배팅을 부추깁니다.
언제나 그렇듯 작은 재미에 만족하는 김이 아닙니다. 공원의 후미진 곳에 사람들이 몰려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속칭 야바위판이 벌어진 것입니다. 주사위 홀짝게임, 확률이 높습니다. 주변 친구들과 눈길을 쭉 맞춘 김, 묵시적 동의를 획득한 후 공금을 꺼내듭니다. 규칙이 있습니다. 첫판에는 천 원, 둘째 판에는 2천원, 승패에 관계없이 합이 3만원이 될 때까지 계속 배팅액수를 늘려가는 방식입니다. 최악의 경우 점심은 붕어빵이 됩니다.
김은 타고 난 꾼입니다. 배팅마다 족집게도사처럼 척척 맞춰버립니다. 신이 난 아이들, 붕어빵이 자장면으로 자장면이 통닭으로 둔갑합니다. 그대로 계속하면 야바위판의 판돈을 몽땅 싹쓸이 할 것 같습니다. 분위기 절정의 순간, 돌연 김은 철수를 선언하고 판을 접습니다. "꾼은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제법 그럴듯한 한마디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승리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맥주 몇 병과 땅콩, 새우깡으로 된 풍성한 잔칫상이 차려집니다. 무용담의 중심에서 일장연설을 하던 김, 지나가는 선글라스 아저씨를 발견합니다. "아저씨, 선글라스 얼마예요?" 어정쩡 다가온 아저씨에게 맥주 한잔을 권하는 김, 승리의 기념품이 간절합니다.
"좋은 것 하나 줘보세요" 줄줄이 엮인 선글라스꾸러미에서 하나를 쑥 뽑은 아저씨, "이게 좋을 것 같은데" "얼마예요?" "3천원"
김은 자존심이 상합니다. 몇 만원을 순식간에 딴 전문가를 몰라본 것입니다. "아저씨 사람 우습게보지 말고 제일 비싼 것 보여 주세요" "그래?" 비장의 카드를 꺼내듯 품속에 감추어 두었던 선글라스를 꺼내는 선글라스 박, "10만원인데 7만원에 줄께" 낙장불입, 꾼의 세계에서 철칙입니다. 한번 꺼낸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7만원을 던진 김,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3천 원짜리 선글라스를 10만원이 넘는 고급이라고 우깁니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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