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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 허씨의 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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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가장이 자살 미수에 그쳤던 날이던가? 오랜만에 고향에 다녀오다가 얼결에 정말 끔찍한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실로 거대한 개 한 마리가 왕복 6차로를 무단횡단하다가 마구 내달리는 자동차에 치여, 그 광활한 도로 한복판에서 사지를 벌떡 들고 벌렁 드러누워 있는 장면을. 연이어서 나는 또 문득 보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또 다른 개 한 마리가 드러누운 개의 그 거대한 몸뚱이를 입에다 문 채, 총알 차량들의 물결을 비집고 도로 밖을 향해 필사적으로 헤엄치고 있는 것을. 너무나 놀랍고도 가슴이 뭉클하여 병문안이나 문상이라도 해야 될 것 같은 처연한 마음이 울컥, 하고 요동을 쳤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몇 년 전에 말로만 만났던 허 씨의 딸애가 나의 뇌리에 불현듯이 환하게 떠오른 것은.

몇 년 전에 나는 제법 오랫동안 병원에서 누워 지낸 적이 있었다. 병원 옥상에서 가끔씩 만나 가벼운 담소를 나누곤 했던 맞은 편 병실의 잔정 많은 허 씨는 언제나 집에 있는 딸애를 몹시도 그리워하곤 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계란 노른자 빛 구름조각을 우두망찰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다.

"이형! 다소간 무리가 있더라도 아무래도 나는 서둘러 퇴원을 해야 될 것 같아요. 여기서 우물쭈물하고 있다가는 내 딸애를, 그것도 몹시도 사랑하는 내 딸애를 그냥 그대로 죽일 것 같거든요."

"왜요? 따님이 어디 많이 편찮으세요?"

알고 보니 허 씨는 몸무게가 한 근 남짓에 불과한 아주 귀엽고 깜찍한 암캐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구태여 시장 가격을 따지자면 대략 300만 원 남짓 정도. 그러나 허 씨에게 이 작은 개는 화폐 가치로는 도저히 환원할 수가 없는 정말 귀하고도 소중한 딸이었다. 허 씨는 언제나 딸을 품에 꼭 껴안고서 잔다고 하며, 그 작은 딸이 침대에 오르내리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높이가 낮은 침대를 특별히 제작했다고도 한다.

허 씨가 아파트 계단을 쿵쿵 올라가면, 그녀는 놀랍게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다양한 발자국들 가운데서 허 씨의 것을 대번에 알아채고, 즉각적으로 현관을 향해 질주를 하여 온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허 씨의 품속으로 정말 사정없이 돌진하여 그 촉촉하고도 감미로운 혀로 얼굴을 마구 핥으면서 신명나게 꼬리를 흔들어대는데, 꼬리를 흔들어도 어찌나 격렬하게 흔들어대는지 저러다가 혹시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덜컥, 될 정도라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누가 나를 이렇게 환호작약, 온몸으로 환영해주겠어요. 물론 나를 사랑하는 가족도 있지만, 내 딸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그런데 그 딸애가 어떻게 되기라도 했습니까?"

"말도 마세요. 그 딸애가 곧 죽게 생겼지요. 평상시 장기간에 걸쳐 출장을 다녀와도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하게도 내가 입원하는 바로 그날부터 무려 3일간의 완전 단식 끝에, 아 글쎄, 혼절을 해버렸답니다. 병원으로 다급히 이송되어 오래도록 링거를 맞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지금도 가물가물한다는군요. 이형! 이형의 가족 가운데는 이형의 입원에 충격을 받아 단 한 끼라도 밥 못 먹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글쎄요. 마음이야 다들 그렇지 않겠지만, 밥 못 먹은 가족은 하나도 없더군요."

"아 글쎄, 그렇죠.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글쎄, 내 딸애가…. 삼일 간의 단식 끝에 혼절을 하고, 지금도 가물가물하고 있다니…. 아아, 불쌍한 것, 나의 딸 흑, 흑, "

이종문 시인·계명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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