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과 북한 군부의 진상규명 거부 등으로 남북관계에 악재가 겹치면서 경색 국면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 정권에서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의례적으로 냉각 기간이 있어 왔다고 애써 자위하고 있지만 초조감을 숨기지는 않고 있다. 사실 그랬다. 남북관계는 늘 순항과 난항이 거듭되어 왔고, 우리는 거센 풍랑을 헤치며 한 발짝씩 전진해 왔다. 또 그러기를 바라는 게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일 것이다.
문제는 찌는 듯한 무더위에다가 경제의 날개 없는 추락, 미국산 쇠고기 수입, 독도 문제, 꽉 막힌 남북관계 등을 지켜보면서 기진맥진해 있는 국민들이 또 하나의 매우 부담스런 국가적 대사(?)를 치르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오늘(5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다. 그가 이명박 대통령과 논의할 현안들 가운데 일부에는 남남, 남북갈등을 촉발시킬 수 있는 뜨거운 감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주한 미군의 방위비 및 반환 미군기지의 오염 치유 분담, 이라크 파병 한국군의 주둔 재연장, 아프간 한국 경찰 파견,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및 미사일방어시스템 전면 참여 문제 등이 대표적인 현안들이다. 한미 정상 간 합의 내용과 수준에 따라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이상으로 남남갈등과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것들이다.
외교부의 베테랑 외교관들에게 그간의 외교경험에 비춰볼 때 강대국과 약소국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거의 비슷한 답변을 내놓는다. 즉 얼마나 많은 다양한 협상 카드를 갖고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경제력, 군사력,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등 전통적이면서 원론적 답변을 기대한 사람들에겐 다소 의외의 답변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답변에는 눈여겨볼 새로운 함의가 포함되어 있다. 경제, 군사적 힘과 같은 하드파워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핵심 국익을 관철시킬 수 있는 사람과 창조적 아이디어의 결합과 같은 소프트파워가 없으면 강대국 행세를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반대로 하드파워가 미흡하더라도 소프트파워를 잘 키워놓으면 얼마든지 강대국 행세를 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잣대로 보면 미국은 분명 최강대국이고, 한국은 국민총소득(GNI) 기준으로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약소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분단국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한국은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조사를 수용하는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또 요청할 것이고, 미국 측은 크게 손해 볼 것도 없는 역할을 기꺼이 수용할 것이다. 미국은 또한 방한에 앞서 결정한 독도 영유권 표기 원상회복 카드를 활용해 한국 측에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지금 미국은 유리한 고지에서 한국을 맘껏 요리할 수 있는 협상카드가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한꺼번에 터지고 있는 복잡한 내우외환에 직면하면서 우리는 보다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보아야 한다. 과연 미국, 일본은 얼마나 신뢰할 만한 우방인가. 또 올림픽 개최 이후 한반도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의 영향력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리고 특히 정부는 언제까지 미국, 중국 등 외세에 의존해 북한 문제를 풀려고 할 것인가 등등.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 등은 모두 국익 우선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하면서 다양한 협상카드를 동원해 도전적 현안들을 제기하고, 자국중심적 이기적인 목표를 달성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들에 맞설 적절한 협상카드를 보유하고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최근 생생히 목도하고 있다시피 우리 외교력의 현주소는 약소국과 다름없는 빈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상대국가를 압도할 수 있는 다양한 협상카드를 발굴하고, 이를 빈틈 없이 관철시킬 수 있는 소프트파워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새로운 국가전략을 짜야 한다. 더불어 하루빨리 분단을 해소하고 남북협력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게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의 숙명이다.
임을출 교수/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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