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세기 新보부상] ⑤쇼핑의 천국 日 오사카

도매상·백화점 밀집 '입맛'대로 쇼핑 가능

▲ 한·일 소호무역상들은 도매시장뿐만 아니라 재래시장, 전문특화시장, 백화점, 지하상가 등 거의 모든 상점들을 조사하고 분석해 물품을 구입하고 판매 전략을 세운다. 오사카의 중심을 연결하는 상가거리. 석민기자
▲ 한·일 소호무역상들은 도매시장뿐만 아니라 재래시장, 전문특화시장, 백화점, 지하상가 등 거의 모든 상점들을 조사하고 분석해 물품을 구입하고 판매 전략을 세운다. 오사카의 중심을 연결하는 상가거리. 석민기자

부산을 떠난 이튿날 아침 오사카 남항에 도착한 신보부상들은 마치 정해진 교전규칙에 따라 전투에 임하는 군인들처럼 날렵하게 움직였다. 그들에겐 여유롭게 차 한 잔 마실 시간조차 없었다. 한국을 떠날 때 미리 주문을 낸 거래처나 단골을 찾아 가격 흥정과 계약을 끝낸 뒤, 발로 뛰는 현지 시장조사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신상품들이 나왔는지, 가격은 어떤지 한국의 시장상황과 비교해 보는 것은 물품구매뿐만 아니라 향후 판매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전문시장, 도매시장 등에서 70~90%의 폭탄세일이라도 하게 되면, 그야말로 대박의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회는 많이 뛰는 상인일수록 잡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런데 왜, 오사카일까? 우리나라와 더 가까운 후쿠오카도 있고, 일본 최대의 도시 도쿄도 있는데, 유독 한·일 소호무역 종사자들은 오사카를 선호한다.

스위티홈 박재현 대표는 "후쿠오카는 상권이 약한 단점이 있고, 도쿄는 상권이 크게 나뉘어져 있어 소호무역상들이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크다"면서 "하지만 오사카는 도심을 중심으로 재래시장, 전문특화시장, 백화점, 대규모 도매상 등이 집중돼 있어 한 곳에서 다양한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오사카에서의 상품 구매요령=소호무역상들의 성패 관건은 '잘 팔릴 수 있는 물품을 얼마나 경쟁력 있는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때문에 초보자들의 경우 보통 소매가의 65% 수준에서 구매가 가능한 도매시장에만 관심을 쏟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성공적 한·일 소호무역을 위해서는 도매시장은 물론이고, 재래시장·전문특화시장·지하상가·백화점까지 철저하게 살펴야 한다. 백화점에서 도매시장보다 더 좋은 물품을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일본이기 때문이다.

"한·일 소호무역상으로부터 물품을 구매하는 국내 고객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입니다. 따라서 쇼핑몰이나 매장에 백화점에서 팔리는 고급 물품을 구색으로라도 갖추고 있어야 고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대형매장의 카드를 만들면 10% 할인되고, 게다가 구매액에 따라 쌓인 포인트로 추가 할인이 가능하다. 도매시장은 아예 사업자등록증과 점포 사진 등의 구비서류를 갖춰 카드를 만들어야 출입할 수 있다. '단골'을 정해두면 그만큼 이익이 된다. 단골 상인고객에게는 '세일정보'를 우편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한국에 있는 브랜드라고 해서 그냥 지나쳐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최신 디자인의 제품들이 일본장에서 팔리고 있다. 또 같은 브랜드의 매장이라도 일본에서는 '입지'에 따라 전혀 다른 제품을 판매한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곳이 바로 '100엔샵'. 100엔샵의 경우 중국산이 많기 때문에 특별한 구매요령이 있다. 먼저 '메이드 인 재팬'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만일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하더라도 '한정'이라고 적힌 물품을 구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정' 제품은 비록 중국에서 생산됐지만 일본에서만 팔리는 제품이기 때문에 품질관리가 우수한 편이다.

◆멀고도 험한 신보부상의 길=상인들은 경쟁력 있는 물품 구매를 위해 하루 12시간씩 발품을 파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은 대중교통 요금이 비싼 곳이다. 지하철 기본료 200엔은 우리 돈으로 무려 5천원에 달한다(10월 19일 100엔당 원/엔 환율 1천500원 돌파). 택시를 타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고환율을 뚫고 수익을 내야 하는 소호무역상으로서는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라면과 햇반, 반찬 등을 준비해 끼니를 때운다. 아니면 슈퍼마켓에서 도시락을 구입해 먹는 것이 보통이다. 500~1천엔짜리 도시락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8천원에서 1만5천원에 육박한다. 결코 만만치 않다.

일본 소호무역상들이 무리를 지어 현해탄을 건너는 것도 정보교환과 더불어 비용절감과 무관하지 않다. 민박집에 5, 6명씩 단체로 묵으면 숙박비를 줄일 수 있고, 또 구매한 물품을 배로 옮겨 싣는 데 드는 물류비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사카에서는 숙소에서 배로 물건을 옮기는 차량 한 대당 9천엔의 비용이 든다. 따라서 여러 명의 상인이 한 대의 차량을 이용하게 되면 그만큼 비용이 절약된다.

오사카를 떠나는 날 40대 후반의 김모씨는 "소호무역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려고 현지탐방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힘들어서 도저히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소규모 장사를 하면서 구매대행을 시켜서는 이윤을 남기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얼마만큼 발품을 파느냐에 따라 이윤이 결정된다"면서 "불편하고 힘든 것을 참지 못하면 아예 시작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 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