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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정현주의 휴먼 토크]가난과 절망 끝에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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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외래 대기실 틈으로 웅크리고 앉아있는 새처럼 작은 지연이의 어깨가 눈에 들어온다. 초등학교 때부터 유난히 깡마른 지연이는 건선으로 꾸준히 찾는 단골이다. 보호자 없이 혼자 다니는 모습이 의아롭게 다가와 관심을 가졌다. 어릴 적 아빠를 교통사고로 여의고, 엄마는 가출해버려 할머니랑 살고있는 당찬 꼬마였다. 그가 올해 수능시험을 쳤다. 서울대에 합격했다고 담담히 전하는 그 아이는 합격의 기쁨보다 서울 유학비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지연이가 "고맙다"며 포장한 작은 선물을 건넨다. 앙증맞은 휴대폰 고리였다.

지연이가 "수학이 어렵다"며 "학원이라도 다니면 좋겠지만 할머니께 도저히 말 할 용기가 나질 않는다"고 울먹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적이 있었다. 그때 지연이에게 신문 기사를 하나 오려 준 적이 있다. 고교 중퇴 후 상경해 학원 심부름, 식당 배달원으로 어렵게 공부해 대학 총장, 상하이 총영사가 된 김정기 총영사의 휴먼스토리가 실린 기사였다. 가난과 절망으로 앞뒤가 꽉 막혀 길이 보이지 않았던 청소년 시절 꿈과 소망은 그를 받혀 주는 '비상구' 였다고 하는 내용이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공부한 끝에 고교 중퇴생이 유명 대학을 순례하며 영어를 가르치는 인기 강사가 되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미국 유학에 도전했다. 뉴욕 주립대에 입학, 최우수 졸업자가 되었고 30대 중반에 미국 로스쿨에 도전해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변호사가 되었다. 그는 '무쇠도 갈면 바늘이 된다'는 심정으로 미국 친구들이 읽을 필요가 없다는 책까지도 모조리 찾아 읽으며 공부했다. 그는 성공은 마음에 있다면서 세상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눴다. 첫째는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사람들, 둘째는 상황을 만드는 사람들, 셋째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인데 성공과 탁월함은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다행히 지연이에게 김정기 총영사의 사연은 정신적인 멘토가 되었고 자신도 로스쿨을 목표로 두고 무쇠를 갈아 바늘을 만들고 말겠다는 심정으로 공부를 했다고 전했다. 자신에게 희망과 격려를 해준데 대한 감사의 선물이란다.

매년 이맘때면 수능을 친 우리의 아들, 딸들 중 점수를 많이 받는 아이들은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의기양양함으로 부모를 앞세우고 외래진료실에 들어선다. 반면 죄인마냥 어깨를 늘어뜨리고 힘없이 나타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모습에서 경쟁위주의 사회에선 어쩔 수 없다지만 단 하루의 시험으로 인생서열을 매긴다는 것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고교 연년생 아들을 둘이나 둔지라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아 진료실을 찾은 입시생들의 사연과 성공담이 궁금해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온가족이 입시생이 돼 극성 엄마의 진두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팀플레이 하는 볼썽사나운 입시 체험담이 많기도 하지만 지연이 같은 성공담이 있기 때문에 살맛나는 세상이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053)253-0707,www.gounm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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