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북도 공무원 A씨는 해외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공항 검색대 앞에서 조마조마해진다. 물론 비싼 명품을 잔뜩 쇼핑했기 때문이 아니다. 평소 눈여겨봐뒀던 각종 식물의 씨앗을 품 속에 숨긴 탓이다. '밀수'해오는 방법도 가지가지. 어떤 종자는 책 속에, 어떤 종자는 젖은 휴지에 싸서 세면도구에 넣어오거나 화장품에 넣어 온다. 그는 "고려시대에도 식물품종보호제도가 있었더라면 우리는 목화씨때문에 엄청난 로열티를 물어야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2. 하우스농업 덕분에 요즘 같은 겨울에도 딸기를 맛볼 수 있다. 대구경북에서는 고령 쌍림이 손꼽히는 주산지로 도내 생산량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눈치채지 못한 변화가 올해 나타났다. 육보(70%)·장희(20%) 등 일본산 품종이 대부분이었지만 '설향' 품종을 찾는 농가가 갑자기 늘어 전체 재배면적의 20% 가까이 차지한 것. 쌍림농협 김영환(50) 차장은 "딸기도 올해부터 로열티를 내야 될 예정이어서 농가들이 국산 품종으로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딸기 속에 숨은 ¥(엔)
로열티는 쉽게 말해 특허사용료다. 공산품에만 붙는 것이 아니고 우리 땅에서 생산한 농작물에도 숨어있다. 아무 생각없이 먹는 딸기와 근사한 프로포즈를 위한 장미에도 포함돼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식물품종 로열티로 외국에 지불해야 할 액수는 한 해 160억원이나 된다. 물론 실제 로열티 계약액은 그보다 적지만 품종별로는 대부분이 외국산인 장미 76억원, 난초 27억원, 국화 10억원, 카네이션 5억원 등으로 추산된다.
특히 올해부터는 품종보호권의 적용이 딸기·감귤 등 모든 작물로 확대될 예정이어서 농가 부담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고 소비자가격 인상도 불가피해진다. 국내 재배면적의 65%가 일본산 품종인 딸기는 연간 약 30억원, 제주도 등지에서 재배되는 뉴질랜드산 참다래는 약 40억원을 외국에 지불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아직 구체적인 협상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딸기의 경우 2006년 열린 협상에서 일본측이 포기당 5원의 로열티를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작목인 쌀의 경우 재배품종의 대부분이 국내 육성품종이고 '추청' 등 외래품종은 보호기간(20년)이 경과돼 로열티 지불 의무가 없다. '후지' 사과, '신고' 배, '캠밸얼리' 포도 등 익숙한 과일들도 보호기간이 지났다.
◆우수종자 개발이 지상과제
로열티를 무는 것은 이들 농작물이 1998년 발효된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 협약에 따라 '종자 특허'를 보호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2년 가입했다.
비싼 로열티를 내지 않으려면 결국 새로운 종자를 개발하는 수밖에 없고 당연히 세계 각국들은 종자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딸기만 하더라도 1980년 이후 미국 230개, 유럽 170개, 기타 국가 60개 등 480개의 신품종이 등록됐다. 이웃 일본도 100년 이상의 품종개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국내 딸기 품종은 1982년에야 처음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짧다. 더욱이 국내에서는 그동안 벼·보리 등 식량작물 위주로 품종개발을 추진해왔고 장미·딸기 등 원예작물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다.
윤재탁 경북도 농업기술원장은 "현재 우리나라가 로열티를 지급하는 품종은 180여개에 이르지만 로열티를 받는 것은 10여종뿐"이라며 "로열티를 물지않고 불법증식해 생산한 농산물은 수출길도 막히고 권리침해로 고소당하는 일도 점차 잦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2010년까지 장미 70개(재배면적의 15%), 딸기 13개(60%), 국화 60개(15%) 신품종 개발을 목표로 품종육성 및 보급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2007년 기준 국내 품종 보급률은 장미 4.4%, 딸기 35%, 국화 4.5% 등이다.
◆지역의 연구성과
경북도도 품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6년부터 신품종 육성에 나선 딸기는 우량계통 150계통이 결실을 맺어 2010년쯤에는 농가에 보급될 전망이다. 지난 2006년부터 벌이고 있는 중국 운남성 농업과학원과 공동연구도 지난해 15개 우량계통을 국내에 들여와 격리재배하고 있다. 최성용 경북도 과채류시험장장은 "재배결과가 좋으면 국내 농가보급뿐 아니라 2011년쯤 신품종으로 등록할 계획"이라며 "국제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품종을 개발하는 일도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화훼의 경우 이미 상당한 결실을 거두고 있기도 하다. 경북도 화훼시험장이 지난 2001년 이후 개발한 품종은 장미 25개, 국화 8개에 이른다. 경북도는 2006년 '향기나' 등 장미 13품종의 통상실시권(종묘생산 및 판매 권한)을 묘목 전문생산업체에 이전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장미 6품종, 국화 5품종의 통상실시권을 민간에 이전했다. 이 가운데 국화 '피치 ND'품종과 장미 '진선미' 품종은 2006년과 2007년 대한민국 우수품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밖에 경북도 농업기술원에서는 지난 2004년 배 신품종 '신라', 2005년 복숭아 신품종 '대명', 2006년 살구 신품종 '만금'을 개발해 품종등록을 마치고 농가에 보급했다.
한윤열 경북도 화훼시험장장은 "새 품종은 보통 개발에 10년 이상 걸리는데다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데도 시간이 필요해 시장점유율을 급격히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소비자들도 딸기 한 바구니를 사더라도 국산 품종인지를 살펴보는 게 작은 애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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