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비슬산 자락인 달성 2차 산업단지 도로 공사장에서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인골(人骨)이 나왔다. 2천300년 만에 비슬산 사람이 부활한 것. 유골은 가지런한 하얀 치아가 눈에 띌 정도로 온전한 형태로 발굴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비슬산 자락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초기까지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인근에 들이 넓어 풍요롭고 기후가 따뜻했기 때문이다.
◆와우산성 가는 길=소한(小寒)이 지난 10일 선인(先人)들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산을 올랐다. 유가사 주차장 못미처에 왼쪽으로 내산(內山)마을로 가는 길이 있다. 마을을 관통해 달리면 초곡산성(와우산성) 이정표가 있고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도로는 울퉁불퉁해 마치 1960년대 신작로를 가는 기분이다. 10여분쯤 달려 '초곡산성 1㎞'라는 팻말이 나오는 데서 차에서 내려 소나무 숲으로 난 오솔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낙엽이 신발을 덮을 정도로 높이 쌓여 있고 군데군데 남아 있는 눈이 한겨울을 실감케 한다. 며칠 전 산성을 오르려다 되돌아간 적이 있다. 옥포 쪽 용연사 방면으로 쉽게 오르려다 응달진 곳에 차가 미끄러져 발길을 돌렸다.
능선길로 접어들면서 30여분을 더 가자 널따란 억새밭이 나타난다. 목적지인 산성에 다다른 모양이다. 산성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큰 고분이다. 어림잡아 지름이 20m에 이르는데 봉분은 가운데 부분이 파헤쳐져 있고 석축이었던 돌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다. 아름드리 참나무가 고분 가운데 버티고 제 집인 양 자랑한다. 밖에서 고분을 들여다봐도 토기 파편들이 눈에 띈다. 인근에 있는 고분들은 모두 파헤쳐져 있다. "이곳에 500여 기의 고분들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대부분 도굴범의 손길을 피해가지 못했다"고 동행한 박흥병 달성군 기획감사실장이 설명했다.
높은 바위에 올라 살펴본 산성의 모양은 길쭉한 타원형이다. 능선을 중심으로 동편은 양지마을이고 서편은 초곡리다. 둘레는 1.5㎞ 정도. 소가 누운 모양새라 와우산성(臥牛山城)이라 부른다. 마침 올해는 기축년(己丑年) 소띠해여서 와우산성에 오른 감회가 새롭다.
산성은 와우란 이름 외에 개구리 모양을 닮았다며 '와와(臥蛙)산성'으로도 불린다. 현풍읍지에는 '과녀성(寡女城)이란 말도 나오는데 '임진왜란 때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죽고 과부와 여자들이 중심이 돼 성을 쌓고 적을 막았기 때문(蔘國相爭時 一寡女奮義 築城禦賊兵之)'에 나온 말이다. 양지마을 사람은 양동(陽洞)산성, 초곡리에서는 초곡(草谷)산성으로 부른다. 삶의 터전에 따라 주민들이 저마다 이름을 지었다.
산성 곳곳에 사람들이 산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성을 둘러보니 유가사 쪽은 망루자리가 확인될 정도지만 초곡리 쪽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 "성안 땅이 기름져서 무·배추 같은 고랭지 채소가 잘 자라 몇 년 전까지는 사람이 살았다"고 박 실장이 말했다. 그는 "예전에 산성 안에 살던 주민이 농삿일을 하다 금·은·장신구 등 유물을 발견해 대구시내 골동품상에 팔아 전답을 사고 큰 부자가 됐다는 소문이 나는 바람에 이곳에 밀집해 있던 대부분 고분들이 모두 도굴되는 수난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 노인이 된 분들이 어릴 때 도굴된 석실 고분 안에서 전쟁놀이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금은 억새와 칡덩굴이 모든 것을 덮고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왠지 모를 연민과 아쉬움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산성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일화가 남아있다. 곽 장군이 성을 쌓고 맞은편 대니산에 줄을 이어 허수아비를 매달고 한밤에 갖가지 색의 불을 켜 북을 두드리는 위장 전술로 왜군의 혼을 뺐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니산까지의 거리는 너무 멀어 줄을 매달기가 불가능하고 주변 산성의 형태로 볼 때 가야시대에 축조한 성터를 곽 장군이 보수해 왜군과 전투를 벌인 것으로 추측된다.
◆파헤쳐진 팔장군묘=아쉬움을 뒤로하고 능선을 따라 내려오자 경사가 가파르고 주위에는 돌투성이다. 등산로 표시조차 없어 길 찾기가 어려웠다. 오를 때는 거치적거리던 나무 잔가지들이 내려올 때는 지지대 역할을 해주니 고맙기 짝이 없다. 돌 비탈길을 내려오자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햇볕이 드는 나무엔 파란 새순이 돋고, 낙엽 밑에 새싹이 움트고 있는 모습이 눈에 잡힌다. 부지런한 생명들은 벌써 봄을 준비하고 있다.
길이 조금 평탄해지면서 대나무 숲으로 길이 나 있다. 이젠 오솔길에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다. 숲을 나오자 울타리 쳐진 고분군이 눈에 드러난다. 높이 5m, 지름 25~30m쯤 될까? 비슷한 고분 3개가 있다. 좀 더 내려가니 같은 크기의 고분 5개가 더 있다. 주민들은 '여덟장군묘(八將軍墓)'라 부른다. 가야시대 부족장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 고분들은 예외없이 모두 도굴됐다. 현재는 고분 주변 정비작업이 한창이다. 고분 주위에 뿌리를 내린 대나무를 걷어내고 봉분을 돋우고 잔디를 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인가.
맨 아래쪽 고분 봉분에 오르자 산 아래로 현풍들과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에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IGIST) 공사장도 보인다. 예로부터 비슬산 자락은 기후가 온화하고 땅이 기름져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하고, 강을 끼고 있어 풍요로웠다. 그러나 신라의 침입으로 이곳에 터를 내린 소국(小國)은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더구나 후인들의 잘못으로 삶의 자취인 무덤마저 도굴돼 그 흔적마저 미미하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역사가 쓰여질 모양이다. 현풍·유가 들판 730만㎡가 대구 테크노폴리스 조성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먼 미래 이곳의 모습이 무척 궁금해진다.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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