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8시쯤 대구 수성구 A아파트. 이 아파트 입주예정자 50여명이 '막대금 지급기한 연장' 등을 요구하며 관리동 앞을 에워쌌다.
한 남자는 "지난해 9월부터 입주가 시작됐지만 상당수 입주예정자들이 주택경기 여파로 기존 살던 주택을 처분하지 못해 입주를 못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건설시행사는 이런 사정에 아랑곳없이 막대금을 요구해 미납할 경우 고율의 연체이자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입주예정자들은 막대금 지급기한을 최소 3개월 연장하고 있는 신규 아파트들과는 달리 1개월밖에 여유를 주지 않은데다 15%의 연체이자를 부과하면서도 미분양 가구를 20% 할인해 음성적으로 매매, 자산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봇물 이루는 신축아파트 민원=경기침체로 아파트값이 분양가 밑으로 떨어지면서 최근 신축 아파트마다 각종 민원이 폭주해 곳곳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대구에서는 지난해부터 건설경기 호황때 분양됐던 아파트들의 입주가 속속 시작되면서 입주예정자들의 시위와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2월 입주를 앞둔 수성구의 B아파트. 12일 오후 입주민 500여명은 신축아파트 현장 부근에 모여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날 입주예정자들은 "높은 분양가에도 불구, 사업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부실공사 의혹이 있는데다, 미분양 가구를 덤핑 처리해 재산 가치가 떨어졌다"며 집단적으로 입주를 거부할 태세다.
이들은 건설사 측에 부실시공에 대한 보수 요구를 넘어 아예 준공검사 저지에 나설 계획이다. 한 입주예정자는 "분양가 밑으로 재산가치가 떨어진 데다 입주할 경우 5억, 6억원의 목돈을 내야하는 가구가 많다 보니 손해를 보더라도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파기하려는 입주민들이 많다"고 했다.
지난 한해 신축 아파트 입주를 둘러싼 집단 민원은 끊이지 않았는데 해를 넘기고서도 숙질 기미가 없다.
민원은 재개발 재건축이 활발했던 달서구와 수성구에 집중되고 있는데, 사례로는 ▷분양원가 공개 ▷분양단가 인하 ▷부실시공으로 인한 재시공 ▷계약해지 ▷입주유예기간 연장 ▷잔금 납부 유예 등 갖가지다.
지난해 12개 단지의 입주가 이뤄진 수성구 경우 아파트 관련 민원이 봇물을 이뤄 한 해 동안 구청에 접수된 민원만 2천여건에 이른다. 2007년 800건이었지만 2배 이상 늘었다. 준공검사 보류나 지연, 인허가 과정을 문제 삼아 구청장을 항의 방문한 것만 해도 24차례에 이르고, 구청 앞에서 집단 시위를 벌인 것도 8차례다. 달서구도 지난해 입주가 시작된 12개 단지 대부분에서 크고 작은 마찰이 수없이 빚어졌다.
◆부동산경기 위축 때문에=업계에서는 이 같은 민원의 이유를 부동산 경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최근 입주가 시작되는 아파트 경우 2005, 2006년 건설경기가 좋을 때 분양된 아파트들이다. 당시 정부의 분양가 자율화 정책에 따라 분양가가 치솟았으나 요즘 신규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면서 입주 예정자들의 경제적 고통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경제위기와 집값 하락으로 불안감이 커지자 위약금을 물고서라도 해약을 하겠다는 계약자가 급증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구청 관계자는 "얼마전만 해도 주민들이 신축 아파트로 인한 조망권, 환경권 등이 침해된다며 집단 항의한 적은 많았지만 요즘처럼 준공승인 연기·저지 등을 요구하며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고 했다.
올해 대구지역 아파트 입주물량은 1만5천여가구로 주택경기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입주예정자들의 집단민원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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