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청도 냇가에서 대 무늬 진 돌을 줏어 '동풍'이라 이름 짓고」

속속들이 두근대는 동부새에, 상기 성깔 남은 소소리바람에, 짐짓 명랑한 듯 퍼덕이는 동풍에 휘는 -꼿꼿하게 휘는- 겨울, 대나무들. 감기로, 누워서도 안간힘으로 버티면서 마디마디 곧게 설레는, 동부새에 소소리바람에 동풍에 눕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마디마디 한 마디로 일어나는 대나무들의 푸른 물음들. 봄으로 쓸리는, 서걱이는, 헛될 수 없는 말의 카랑카랑한 잎사귀들. 동부새를 소소리바람을 동풍을 안으려 흰 겨울 비탈에 서는 이가 그렇게 온몸 흔들며 안깐힘하며 휘젓는 칼날의 춤. 마구, 또 기어이 제 몸의 빗자루로 서서 성긴 적멸의 어둠을 쓴다

강의 돌 중에, 특히 청도 유천 근처 강의 돌 중에 소위 국화석이라 불리는 문양석이 있다. 희거나 누런 바탕에 국화나 대나무 모습이 시커먼 먹으로 일필휘지 새겨진 모양새이다. 시인이 탐석한 돌은 대나무 문양석이다. 그 대나무가 시인을 자극했다. 그게 현실의 대나무보다 더 대나무답다. 그러기에 돌에 박혀 영원히 대나무이지만 바람/겨울조차 돌 속의 대나무를 따라 돌 속에 들어갔다. 돌 속에 대나무만 박힌 것이 아니라 바람/겨울도 같이 새겨졌다. 이 돌 속의 대나무는 현실의 대나무보다 더 날카롭고 더 명랑하고 더 안간힘으로 바람/겨울을 버틴다. 날카로운 것은 바람/겨울에 부딪치기 위해서이고 명랑한 것은 바람/겨울과 수작하기 위해서이고 안간힘인 것은 바람/겨울이 서럽기 때문이다. 바람도 모양새도 단순하지 않다. 동부새이거나 회오리바람이거나 동풍이다. 시집 『백자도』무렵의 초기 이하석 시의 언어감각이 떠올려지는 것은 동부새와 소소리바람과 동풍이 번갈아 내 귀싸대기를 때리기 때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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