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벌레」/ 이성선

꽃에는 고요한 부분이 있다

그곳에 벌레가 앉아 있다

이성선의 「벌레」는 설명보다 읽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2행이 아니라 2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공백을 채우면서 읽는 법이 분명 있겠다. 꽃은 가장 극적인 사물이다. 어떤 비유의 중심에 있어도 모든 사연을 다 꿰차는 존재이다. 가장 극적인 고요로 우리는 태풍의 중심을 떠올린다. 그곳의 고요는 생의 오르내림과 다를 바 없다. 그곳은 균형의 중심이다. 조금만 벗어나면 태풍에 휩쓸리는 혼돈이지만 고요의 중심이기도 하여 우주와 통하는 지점이다. 그곳에 꽃이 있고 그 극점에 벌레가 있다. 벌레의 원개념은 물론 꽃에 덤비는 나비나 벌일 터이지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벌레는 괴로운 자아와 곧장 이어진다. 상처받은 자만이 진실에 다가간다는 에스프리를 빌린다면 꽃의 중심, 우주와 통하는 고감도의 안테나 아래 약하고 소박한 마음의 집결체인 벌레가 앉아 있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게다가 '∼있다'라는 간결한 운율이 벌레와 꽃의 운명을 암시한다. 이러한 산문적 해석을 배경으로 「벌레」를 읽는다면 우리 주위가 꽃잎과 암술이나 수술의 그늘로 덮이지 않을까? 하지만 시 「벌레」는 한 가지 해석으로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여백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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