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에서는 공천 작업이 한창이고, 해당 지역에서는 일찌감치 선거 바람이 불어서 북새통이라고 한다. 여야 각당은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후보자를 확정짓고자 하지만 난항을 겪고 있으며, 선거를 치르게 될 지역에서는 예비후보자들의 명함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수십명에 이르는 예비후보자들의 행렬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라니 직접 가보지 않아도 알 만한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력 정당의 공천과 관련된 언론 보도는 늘어나고, 그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공천 지망자들의 애타는 모습도 눈에 선하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마음에 정당의 지도자나 공천 심사 당무자들을 직접 찾아가 압박을 가하거나, 혈연·지연·학연 등 온갖 연줄을 동원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선거구민을 끌고 와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선거 때만 되면 겪는 일이라서 정치의 문외한이라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공천이란 말 그대로 '공정한 천거'를 뜻한다. 정당은 이를 통해 검증된 후보자를 선거에 내보냄으로써 유권자로 하여금 자신의 대표를 뽑을 수 있는 선택가능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당의 공천은 정당의 자치적인 내부문제이면서도 대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공직선거의 핵심적인 영역이다. 만약 그것이 잘못된다면 국민의 선택가능성을 침해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는 것은 정당들이 이미 이 같은 국민의 선택가능성을 침해했음을 의미한다. 지난 선거에서 제대로 된 공천을 했다면 지금과 같이 재·보궐 선거를 해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 대해서 정당의 지도자들은 얼마나 생각하고 있을까. 공천을 하는 사람이나 공천 지망자 모두 숙연해져야 할 텐데 그런 모습들은 찾아보기 힘드니 안타까운 일이다.
광복 이전에는 공천이라는 말이 없었다. 정당정치제도가 도입되고 선거를 자주 하다 보니 후보니 공천이니 하는 말이 생긴 것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도 公選(공선:공평하게 뽑는다) 選擧(선거:여러 사람 가운데서 뽑아 추천한다)라는 말이 있었지만, 모두 관리를 뽑아 등용한다는 뜻이고, 擬望(의망)은 후보자로 추천되는 것을 뜻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淸白(청백)이었으며, 그 때문에 공직에 나아간다는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문에도 큰 영광이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오늘날의 공천은 생각할 게 많다. 각 정당이 밝히고 있는 공천 기준을 보면 당선 가능성, 정체성과 당 기여도, 도덕성과 의정활동 능력 등을 들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당선 가능성이다. 사실 도덕성이나 다른 기준은 겉치레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비틀린 정치 현실은 당선 가능성만 중시하는 이런 공천 기준에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닌지 크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孔子(공자)가 고을의 원님이 된 제자에게 "쓸 만한 사람을 구했느냐"라고 묻자, 제자는 "澹臺滅明(담대멸명)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는 좁은 지름길은 다니지 않고 공무가 아니면 제 방에 오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정정당당하게 큰 길을 다니는 사람, 유형무형으로 청탁 공세를 취하지 않는 사람을 쓸 만한 사람의 기준으로 본 것이다. 이런 기준만이라도 지킬 수 있다면 제대로 된 공천이 되지 않을까.
재보선을 하게 된 데는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야 하는 유권자의 책임도 있다. 그런 만큼 사람 알아보는 지혜가 진정 필요한 시점이다. 인물 됨됨이를 파악하는 방법에 대해서 공자는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의도를 살피고, 그 사람이 편안히 여기는 것을 살핀다면, 사람이 어찌 자기를 숨길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리고 '十八史略'(십팔사략)에는 다음과 같은 말도 있다. "평소에는 그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살피고, 부유하다면 그가 베푸는 것을 살피며, 벼슬이 높다면 그가 채용하는 사람을 살피고, 궁하면 그가 하지 않는 것을 살피며, 가난하면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살핀다(居視其所親 富視其所與 遠視其所擧 窮視其所不爲 貧視其所不取)." 공천 심사자나 유권자 모두에게 참고가 될 만한 말이다.
이 상 호(대구한의대 중어중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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