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를 여행할 때면 그 도시를 상징하는 맛집을 찾게 된다. 슬프게도, 대구엔 오랜 전통과 맛과 멋을 동시에 지닌 식당이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르네상스 레스토랑은 대구의 상징적인 레스토랑 중 하나다. 단순히 오랜 역사 때문만은 아니다. 20년 이상 한 주인이, 한 장소에서 같은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은 전국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서울에 하나 있었는데 지난해 문을 닫았단다. 르네상스를 23년간 이끌어온 김영수(58) 사장은 대구 양식업계의 산 증인이다.
김 사장이 조리에 뛰어든 것은 17세. 당시엔 조리교본은커녕 누구 하나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월급의 절반을 뚝 떼내 전국 맛집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선배들에게 맞아가며 밑바닥부터 다져온 김 사장은 종로호텔 주방장을 맡았다. 그 때가 25세. "아마 관광호텔 사상 최연소 주방장이었을 겁니다. 파크호텔이 오픈할 때 33세에 70여명을 거느린 총주방장이 됐으니까요."
김 사장은 한일호텔, 종로호텔, 동인호텔 등 수많은 호텔 주방을 책임지다 독립해 1986년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는 늘 '테마가 있는 레스토랑'을 추구했다. 1990년대 초, 라이브카페를 대구 최초로 열었고 설운도, 태진아, 최진희 등 당시 르네상스를 거치지 않은 가수는 없을 정도.
23년간 르네상스를 거쳐간 종업원만 해도 수천명. 숱한 기록을 남긴 김 사장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식당으로 성공할까'가 아니다. 왜냐하면 식당 성공비결은 지극히 단순하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으로 친절하게 서비스하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식당주인이 '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투자에 소홀하게 된다. 그러면 맛이 떨어지고 손님의 발걸음이 끊긴다. 김 사장은 스스로 말한다. "나처럼 식당해서 돈을 많이 만진 사람도 없을 것이고, 식당해서 나처럼 돈 못 번 사람도 없을 걸." 돈을 엄청나게 벌었지만 식당에 재투자한 데다 사람을 잘 믿는 바람에 떼인 돈만 해도 적잖다.
수천, 수만개의 식당이 명멸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르네상스는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이 식당에서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고, 최근 그 아들이 르네상스에서 맞선을 본 경우도 있다. 추억과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공간이다. 르네상스가 '밥집' 이상의 의미가 되는 순간이다.
그는 '식당 주인'이 아닌 '조리사'로서 음식에 대한 철학이 단단하다. "식당 잘하면 의사들 다 망하게 할 자신 있어요. 그만큼 먹는 게 중요하죠. 좋은 재료와 적당한 조리법이 어우러지면 약 이상입니다."
그는 일본의 유명 식당들을 타산지석으로 삼는다. 나태해지다가도 일본 식당에 다녀오면 정신이 바짝 든다. "성공한 일본 기업의 비법을 알고 싶으면 먼저 일본의 오래된 식당에 가보면 됩니다. 종업원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종업원들의 동선은 어떻게 설계됐는지, 고객들이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무엇을 준비했는지, 상품의 질은 어떤지 보세요.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겁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수시로 낡은 수첩을 꺼내들었다. 빡빡하게 채워진 수첩 가운데서 좋은 글귀를 찾아 기자에게 들려주곤 했다.
그의 머리맡엔 항상 물잔과 필기도구가 놓여 있다. 머릿속에 수시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해야 하기 때문에 필기도구가 없으면 불안하단다. 그의 머리와 손은 새로운 음식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 그는 부케처럼 어여쁜 샐러드 한 접시를 내놓았다. "최 기자에게 어떤 특별한 선물을 할까, 고민 끝에 준비한 거예요." 평범한 샐러드지만 부케처럼 모양을 내 화사한 봄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요리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식당이나 할까' 한다. 김 사장은 '절대 식당하지 마라'고 당부한다. "식당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천만원 들고 전국 맛집을 다녀보라고 해요. 맛과 친절을 테스트해 본 후에도 자신 있으면 그때는 식당을 해도 되죠."
김 사장은 '전통을 지킨다'는 미명 하에 맛이 바뀌지 않는 식당을 질타한다.
"사람들의 입맛은 끊임없이 변하고 앞서가는데 음식이 그대로면 안되죠. 기존의 맛을 과학적으로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맛의 도시' 대구를 위한 필수적인 노력입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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