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경기 틈탄 '고용착취' 올들어만 6천 건 신고

지난해 11월 실직한 정모(53)씨는 생활정보지의 구인광고를 보고 경산의 한 ㄱ산업에 전화를 했다. 이 업체 사장은 월수입 100만원에 4대 보험까지 들어준다고 했다. 정씨는 그다지 좋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이 불경기에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넥타이를 매고 찾아간 면접날 회사 사장은 말을 바꿨다. 시급 4천원의 아르바이트직을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기가 막힌 정씨는 "월급 100만원이라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고 하자 사장은 다짜고짜 "그러면 하루 10시간씩 일하면 된다"고 했다. 이어진 사장의 말은 더욱 황당했다. "점심값은 본인 부담인 거 알죠? 하루 종일 앉아서 하는 일이라 힘들진 않을 겁니다." 결국 그는 자존심이 상해 발걸음을 돌렸다. '앞으론 이런 일도 구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정씨는 억울함보다 두려움이 더 앞선다고 했다.

유례없는 경기 불황을 등에 업고 피고용인들에 대한 고용착취가 도를 넘고 있다. 매출 감소로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열악한 고용조건을 제시하고, 싫으면 그만두라는 식의 반협박을 일삼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고용착취를 호소하는 근로자들의 피해 상담사례도 덩달아 늘고 있다. 대구지방노동청에 따르면 대구경북의 고용착취 관련 진정은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월 2천건을 넘어섰다. 지난 한 해에는 모두 2만3천83건이 접수돼 2007년(2만1천897건)보다 1천186건(5.4%) 증가했다. 올 들어서도 3월까지 모두 5천868건이 접수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4천899건)보다 20%가량 늘어난 수치다.

노동부가 지난 2월까지 집계한 전국의 체납임금 건수와 금액도 4만2천166건, 1천751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의 2만4천889건, 1천2억원에 비해 각각 69.4%(1만7천277건) 74.7%(749억원)나 폭증했다.

민주노총 대구일반노동조합 권택홍 정책부장은 "전체적으로 경기 사정이 나빠지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피해자들의 상담이 급증했다"며 "중소규모 영세업체가 많은 성서공단이나 3공단의 사례가 많다"고 했다. 성서공단노동조합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고용인의 노동착취에 대한 상담 신고를 하는 근로자들이 갑자기 많아져 노동청이나 노동위원회 등에 소개를 해주고 있지만 상담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한계가 있다"고 했다.

실제 근무 조건과 현저히 다른 조건을 내세우는 허위구인광고도 여전히 기승을 부려 구직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대구종합고용지원센터 성주연 담당은 "모니터링을 해보면 구인광고에 고정급을 준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성과급을 제시하는 업체가 많아 시정 조치를 내리고 있다"고 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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