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어떻게 살아야 부끄럽지 않게 살았노라고 후대에게 말할 수 있을까? 어려운 시대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 여자, 이숙의'라는 책을 읽었다. 이숙의라는 분의 자서전이다.
이숙의 선생은 우리 역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사신 분으로, 1945년 해방정국에서 남로당 경북도당 위원장을 지낸 박종근이라는 분의 아내이다. 혹시 지리산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이현상만큼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남로당 경북도당 위원장이었다면 거물이다. 그런데 남로당원들은 나중에 거의 쫓기는 몸이 되었고, 산에서 죽거나 체포되었다. 박종근 위원장은 산에서 죽는다.
이숙의 선생은 딸 하나를 낳아 키우며 남편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 나는 이분의 삶의 기록을 읽으며 삶의 존엄함이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해방 직후라면 얼굴도 못 보고 혼인을 하기도 했던 시절이다. 그런 시절 두 사람은 열렬한 사랑을 했고, 평생 그 사랑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해방 직후 삼일절 기념식장에서 연설하는 청년 박종근에게 반한 처녀 이숙의는 머리 좋기로 소문난 공주사범 출신 여선생이었다. 콧대 높고 자존심 강한 여교사 이숙의를 첫눈에 반하게 한 박종근 역시 그 여자에게 반했고, 둘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신혼의 단꿈은 너무 짧아 두 사람의 길고 영원한 이별이 시작되었다. 해방조국의 청년지도자로 이름을 날리던 청년 박종근이 쫓기는 신세가 되면서 두 사람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남편이 산에서 죽고, 이숙의는 딸을 낳아 키우며 전쟁과 굶주림, 가난을 견디어나가게 된다.
당시 거물급 빨치산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수시로 붙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더러 간첩혐의를 받고 갇히기도 했다. 하지만 죽을 만큼 딱한 처지가 되어도 인정을 베푸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고비마다 그는 교사로 복직할 수 있었고, 대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평생을 살게 된다. 기생이 돈을 모아 지었다는 복명국민학교와 대구국민학교에서 근무했고, 나중에는 장학사로 일하기도 했다. 교사로서 이숙의는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극진히 배려하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당시는 가난하고 어렵게 산 시절이었다. 국민학교 입학식 날 아무도 오지 못해 울먹거리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닦아준 이야기, 그 아이가 자라서 장년이 되어 선생님을 만나는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말년에 선생은 하나뿐인 외딸과 함께 살기 위해 독일로 가서 외손자들을 키우며 말년을 사셨다. 외동딸과 시댁가족은 기독교인으로 남북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집안이었다. 독일에 유학 갔던 딸이 통일운동을 하다가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평온한 노년의 삶속에 한국에 다니러왔다가 대구가톨릭병원에서 임종을 맞은 이숙의 선생은 이래저래 대구와 인연이 많은 분이다.
요즘 우리는 가치관이 뒤바뀐 시대에 살고 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때로 이런 세태가 쓸쓸하게 느껴진다.
이숙의 선생의 삶을 읽으며, 삶의 품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자신의 삶을 지켜나간 인생. 품위 있는 삶, 아름다운 삶이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신남희
신남희씨는 대구 최초 민간도서관인 '새벗도서관' 관장을 1989년부터 맡고 있습니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신 관장이 앞으로 수많은 도서관 책들 가운데 좋은 책, 아름다운 책을 소개하게 됩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