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만리장성 부풀리기

중원 땅에서 처음 장성을 구축한 사람은 齊(제)의 宣王(선왕)이라고 사마천은 기록했다. 역사학계도 흔히 전국시대 중국의 각 나라들이 장성을 쌓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중원 북쪽에서는 燕(연)과 趙(조), 秦(진)이 기원전 4세기 말부터 자기 영토를 침입하는 유목민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 고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 프린스턴대 니콜라 디 코스모 교수의 해석은 다르다. 저서 '고대 중국과 그 적들'에서 코스모 교수는 "중국의 장성은 북방 유목민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통념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 어떤 중국 측 사료도 장성 구축 이유와 기능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북방의 장성은 진'조'연나라가 추구한 팽창주의 전략의 일부라고 해석했다. 유목민에 대한 군사적 공격의 거점이자 영토 확장의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의 실제 길이가 8천851.8㎞라고 공식 발표했다. 국가측량국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약 2천500㎞나 더 긴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동쪽 기점은 발해만 북쪽 山海關(산해관)이 아니라 요녕성 단둥시 북쪽 虎山(호산)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압록강을 경계로 북한 의주와 마주하는 곳이다. 중국 측은 "명대 문헌에 따라 기점을 잡았고 산해관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산해관이 중국사에서 다시 빛을 본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중국 정부가 국가정체성 찾기에 나서면서 복원했다. 이곳 안내문에도 "연나라 장성이 압록강까지 이어졌고, 이후 명나라 장성이 호산으로 이어진다"고 선전한다.

중국 측 주장을 뒷받침하려면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 18세기 '동국지도' 등 각종 지도에 산해관 이동의 장성은 고구려 장성으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류왕 14년(631년)조에는 '16년 공사 끝에 천리장성을 완성했다'고 기록돼 있다. 재야사학계는 호산 장성도 고려의 장성 유적이라고 말한다. 우리 역사학계는 "만리장성이 압록강변까지 이어졌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중국이 장성에까지 기를 쓰고 이데올로기를 덧입혀 부풀리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오늘날 만리장성은 중국의 문화적'정치적 은유를 포괄하는 것"이라는 코스모 교수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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