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그들만의 리그'로 내버려 둘 것인가. 미술시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전에 미술계 관계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전국에서 직업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이 4만여명인데 경매나 화랑을 통해 활발하게 거래되는, 그나마 먹고살 만한 작가는 200여명이라고. 답을 한 사람이 국내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거대 옥션회사 관계자임을 감안하면 얼추 맞는 말일 성싶다. 작가를 평생의 업(業)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는 확률이 0.5%, 즉 200명 중 1명꼴이라는 말이다. 미술관련 학과 졸업생 중에도 전업 작가가 되는 비율은 10%도 채 안 된다. 그렇게 어렵게 작가가 됐지만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하기란 '마늘이랑 쑥만 먹고 사람되기'만큼 어렵다. 미술계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한눈 팔지 말고 꾸준히 작품을 하면 언젠가 인정받는다'고 말하지만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꾸준히'의 기준도 없고, '언젠가'는 한반도 통일 시점만큼이나 애매모호한 시점이다. 적어도 한 계층의 직업군이 있다면 그들 중 25%는 어렵고, 50%는 그럭저럭, 25%는 살만한 수준이 돼야 한다. 전업 작가가 돼서 먹고살만할 확률이 0.5%라면 이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현상임에 틀림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화랑-전문 컬렉터'로 이어지는 고리의 이음새가 너무 단단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내 집 장만하고 먹고살 걱정을 한 시름 덜고 나면 누구나 문화를 향유하고 싶어진다. 미술도 그 중 하나다. 내놓고 자랑하고, 오며가며 바라보면 흐뭇한 그림 하나쯤 걸어놓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미술품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대공황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지만 미국에서는 값이 폭락한 농산물을 내다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작가의 작업실과 화랑의 수장고마다 그림이 그득하다. 먼지가 켜켜이 쌓여 윗쪽에 쌓인 먼지가 굴러내릴 지경이다. 그런데도 그림이 시장에 나오지 못한다. 그림을 사고픈 사람은 많은데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정해진 가격 때문이다. 그 비싼 가격에는 살 사람도 없는데 언젠가는 살 사람이 있겠지하며 마냥 쌓여만 있다. 터무니없는 헐값에 그림을 처분하라는 말이 아니다. 접근 가능한 가격으로 그림 값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200만~300만 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이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저렴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작가나 화랑 관계자들에게 미술시장의 대중화 필요성을 말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지만 어떻게 낮춰야 할지는 답을 하지 못한다.
미술시장의 되팔기 기능 부재도 한몫을 한다. 처음 그림을 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말은 듣는다. "좋은 그림을 사세요. 실컷 감상한 뒤에 나중에 팔면 값도 오르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묻고 싶다. 좋은 그림의 기준은 뭐고, 나중에 값이 오른다는 보장은 누가 하며, 되팔고 싶을 때 어디에 내놔야 한다는 말인가. 예술품을 감상하기 위해서 사야지 나중에 한몫 보려고 하면 안된다는 말은 하지 마시라. 정말이지 순수한 동기에서 그림을 샀던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이발소 그림과 고가의 화랑 그림을 이어줄 중간 시장이 없다. 동맥경화에 걸린 미술시장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시장이 필요하다. 과연 이것이 작가와 화랑을 죽이는 일일까?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돌반지나 생일 선물 대신 미술작품 하나 선물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김수용 문화부 차장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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