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여담女談] 여성이 서로를 돕지 않으면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여성 직장인 70%가 같은 직장 여성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며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은 관리직이나 전문직에 여성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숫자가 많아진 데 있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여성의 적은 더더욱 여성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그런데 관심을 끄는 이유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미 전문직을 비롯해 모든 분야에서 여성들의 진출이 갑작스레 늘었고, 그들이 처한 직장 내 환경은 일찍이 여성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라는 점에서다. 그 때문에 학습은 쉽지 않고 그들 앞에 놓인 길은 아마도 스스로 개척해야만 하는 험난한 길일 것이다.

기자가 초년병 시절 그 당시 이름을 날리던 서울의 한 여자 선배(훗날 신문사 사장까지 지냈다)는 "여기자의 권익을 찾으려면 머릿수를 늘려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세미나에서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여기자의 권익을 투쟁과 쟁취가 아닌 머릿수로 해결하려 하다니 참으로 무기력한 집단이며 수동적인 선배라는 생각을 했었다. 세월이 흘러 신문사 밥을 먹으면 먹을수록 그 선배의 말은 기가 막힐 정도로 정확한 '답'이었다. 머릿수가 많아지니 여기자를 짓누르던 문제가 하나둘씩 해결됐다. 출입처의 제한도 부서의 제한도 풀렸다.

문제는 승진이었다.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였다. 앞으로 여성 직장인들에게는 이처럼 선배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환경이 기다리고 있다. 여성들의 진출이 늘면서 여성 공무원이 30%를 웃돌고 있고 올해 신규 임용 검사 중 여검사가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그리고 2007년 서울대 의과대학 본과 학생 중 40%가 여학생이었다. 자리를 놓고 서로가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경쟁자가 된 것이다.

대구시장은 올해 한 여성 행사에서 "여성들끼리 이제 그만 좀 싸우라"고 했다. 여성들끼리 서로 헐뜯고 싸우는 바람에 시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간섭의 빌미를 준 것이다. 1988년 여성가정복지국장 자리가 처음으로 만들어졌을 때 대구시나 경북도 모두가 여성 간부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구시도 경북도도 남성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다.

상대방을 헐뜯고 괴롭혀서 그 자리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면 참으로 어리석다. 더구나 그런 일로 있던 자리까지 빼앗긴다면 더더욱 어리석다. 여성들이 서로 돕고 밀어주어야 하는 명백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sjkim@ms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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