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권에서는 '노무현'이라는 상징을 둘러싼 정치적 쟁탈전이 한창이다. 그를 내쳤던 민주당은 '노무현 정신의 유지'계승'을 주장하며 재평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이 좀 더 '왼쪽'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후 모든 존칭 생략)의 '價値(가치)'와 '遺志(유지)'를 이어받겠다고 다짐한다. 노무현을 '반민중적 신자유주의자'로 비판해왔던 과거는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이런 언행들을 듣다 보면 노무현은 마치 '진보 좌파' 인사였던 것 같다. 정말 그랬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단언컨대 '노무현을 계승하는 것'과 '왼쪽으로 가는 것'은 땅과 하늘만큼이나 다르다. 오히려 노무현이 한 일은,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적 조류에 한국을 적극적으로 적응시킨 것이다. 전임자인 김대중이 박정희나 전두환도 시도하지 못했던 '자본시장 자유화 및 개방'(국내 기업의 소유권을 외국인이 보유하거나 거래토록 허용)을 완수했다면, 노무현은 강력한 시장 개방과 금융'서비스 산업 육성을 통해 한국의 '신자유주의 혁명'을 완료하려 했다. 사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경제 개방과 시장주의라는 '우파 개혁'을 가장 강력하게 추진한 정치 지도자는, 좌파로 불리는 김대중과 노무현이었다.
노무현은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다소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래서 금융을 비롯한 교육'의료'법률'회계 등 '고급 서비스업'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고 했다. 그래서 '동북아시아 금융허브'와 그 수단인 자본시장통합법을 추진했다. 해외의 유수 금융기관을 국내로 유치하기 위해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한 것도, 골드만삭스나 리먼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을 육성하자는 주장이 국정 지표처럼 부상한 것도 노무현의 치세였다. 은행에서 보험 상품을 팔고, 증권사가 지급 결제권을 가지게 하는, 이른바 금융기관의 겸업화와 대형화를 본격 추진한 것도 참여정부였다. 이런 개방 지향성에서 보면 노무현이 한'미 FTA를 제안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경제 성장은 양극화를 더욱 격화시키는 경향을 가진다. 한국의 대외 의존도 역시 노무현 시대에 크게 심화되었다. 국민총소득(GNI)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노무현이 취임한 2003년 70.6%에서 2007년에는 85.9%로 급증했다.
노무현은 자신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성장 전략의 이런 문제점(양극화)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복지제도를 확충하고 진화시키려 했다. 생활 유지가 어려운 시민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공공부조는 노무현 집권기에 2배 가까이 늘어났고, '의료보험 보장 비율'도 김대중 재임시의 50%에서 64%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노무현 복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인적 자본, 특히 어린이에 대한 사회투자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국가가 저소득층의 어린이에게 '투자'해서 '경쟁력 있는 시민'으로 길러내겠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아동발달지원계좌'는 저소득 어린이 측에서 이 계좌에 일정한 금액을 적립하면 18세까지 같은 금액을 정부가 넣어주는 제도이다. 해당 어린이는 적립된 돈을 18세 이후, 학자금, 기술습득 비용, 창업이나 주거마련 비용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희망 스타트 프로젝트'는 저소득층의 0~12세 아동을 대상으로 건강'복지'교육 등에서 맞춤형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보육 예산이 2003년에서 2007년 사이 4배 이상 늘어났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적극적 개방을 통한 강력한 성장'이라는 기조로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복지 부문에서 어린이에게 투자함으로써, 사회통합(과 미래의 생산적 인력 육성)을 꾀했던 것이다.
한국 여'야권의 각종 정파들과 지식인들은 자신에게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능력과 용기가 있는지 냉정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동일한 대상(예컨대 노무현)에 대한 평가 및 감상을 시간과 정치적 이익에 따라 이토록 심하게 갈아치우지는 못한다. 산자들의 이익을 둘러싼 정치적 분란과 '제멋대로의 평가'에서 노무현을 해방시켜야 한다. 민주화 투쟁에서 세계화로 이어지는 현실에 노무현이 어떻게 대응했고 어떻게 자신의 사상을 변화시켜왔는지 차분하게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한국 정치가 발전할 수 있다.
이종태(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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