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용락의 시사코멘트] 노동자의 현실과 장사(壯士)의 꿈

휴일이었던 14일 저녁 대구 남산동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건물 지하 소극장에서 연극 '장사의 꿈'을 관람했다. 대구지역 소극단 '가인'의 한 달간 장기공연 중 마지막 공연이었다. 그래서인지 66㎡ 남짓한 공간에 평소보다 많은 30여 명의 관객들이 빼곡히 앉아 연극을 보고 있었다. 열연하는 두 명의 배우 얼굴에서 몇 버킷(바케스)의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배우들의 액션이 커질 때마다 지하 강당에는 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무더운 초여름 밤, 무엇이 저 배우들을 신명 들리게 해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연극에 몰입하게 하고, 관객들은 먼지를 마시며 관람하고 있는가. 그것은 '예술혼' 때문일 것이다. 헤겔은 자신의 '예술철학'에서 예술은 진리의 초역사성보다 사유의 틀을 제공하면서 끊임없이 현실에서 새로운 진리를 사유하게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갱신된 진리, 품위가 있는 인간적인 삶에 대한 갈구가 저 무명 배우를 들뜨게 하고 관객들 또한 뜨겁게 공명하게 만들었으리라.

'장사의 꿈'의 원작은 황석영이 197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뱃놈의 아들로 태어나 가진 것은 건장한 신체뿐인 주인공이 출세를 위해 그 육체를 밑천 삼아 분투하지만, 자신의 바람과는 다르게 목욕탕 때밀이에서 에로영화의 주연배우로, 다시 몸을 파는 남창의 처지로 전락하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그 연극을 보면서 노동자의 삶이란 게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래서 막스는 전 세계의 노동자를 향해 제발 단결하라고 외쳤던가? 소설이 발표되고 연극으로 무대에 오른 지도 35년이 지났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노동자의 처지가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에 경찰 투입을 앞두고 노동자들끼리 소위 '노-노'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1천여 명의 해고 노동자와 우선 해고에서 살아남은 자들 간의 멱살 드잡이와 고성 속에서 해고노동자의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애처롭게 울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또 용케 해고를 면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어떠한가. 서로 배신자와 공멸의 원흉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침을 뱉는 이들 사이에 인간의 얼굴은 이미 실종되고 야만의 얼굴만 가득하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같은 아파트 주민이며 다정한 이웃이었던 이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쌍용자동차 경영 실패의 책임을 노동자 해고라는 극단적인 처방에 떠넘기는 경영자, 중국자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은 없는가? 그런데도 정부는 경찰력 투입에 초를 재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들 해고노동자들에게 국가는 무엇이며 이들은 어디 가서 누구를 잡고 하소연해야 하나? 노동자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장의 자살을 불러온 화물차 사태, 용산 재개발 참사 등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를 이루 헤아리기 어렵지 않다.

각 대학도 이제 기말고사를 마치고 방학에 들어간다. 전국 7만여 대학 시간강사는 당장 수입이 없어져 무더운 한여름을 춥게 보낼 수밖에 없다. 전국 비정규직 교수노조(시간강사)에 따르면 2008년 기준으로 주당 9시간 강의를 할 때 강사들의 연봉은 990만 원이다. 그러나 주당 9시간을 할 수 있는 강사도 그렇게 많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최악의 노동현실이 그 이름도 고상한 '학문의 전당' 안에서 자행되고 있는 셈이다. 대학 강사의 임금이 이 지경인데 수업의 질 문제나 대학 경쟁력 강화라는 말에 어떤 진정성이 실릴 수 있을까? 남을 짓밟고 쌓은 성과가 오래 가지 못하듯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사회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 이건 天理(천리)다.

안타까운 것은 MB정부가 들어선 후 표현이나 집회'결사의 자유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부자에게 유리한 감세정책이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는 양극화의 심화로 이어질 게 뻔하다. 우리에게 정치적 민주주의가 최종목표는 아니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물질적 평등이 어느 정도 이뤄지는 사회적, 경제적 민주주의에 닿기 위한 길목이다. 경쟁지상주의, 승자 독식주의와 같은 기존 체제 아래서 진정한 의미의 인권은 없다. 이런 현실을 두고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미래사회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 내의 관계, 힘의 논리보다는 다원적 협동관계, 부의 축적보다는 삶의 질"()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 의미를 곰곰이 새겨봐야 할 말이다.

(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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