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난 곳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생가 주변은 어떻게든 의미가 부여되고, 여론의 눈길을 받게 된다.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조그마한 변화도 언론에 보도되기 일쑤. 대통령이 퇴임한 뒤 생가주변이 상당한 개발이 이뤄진 곳도, 상대적으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곳도 있었다.
◆합천 내천리, '예나 지금이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는 인근 1034번 지방도가 새로 생긴 것을 제외하고 재임 당시인 80년대 초반과 큰 변화가 없다. 전 전 대통령이 태어나 가족들이 만주로 이주한 8세 때(1939년)까지 살았던 생가는 재임시절인 1983년 초가 4동(안채, 헛간, 곳간, 대문)을 옛 모습대로 복원해놓았다. 합천군이 2002년 생가 주변 터를 매입, 해마다 초가지붕을 개·보수하고 있고, 올해 전 전 대통령의 이력을 담은 입간판을 생가 앞에 새로 세웠다. 합천군은 전 전 대통령이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왔던 생가 어귀 터를 매입한 뒤 '성장가'를 꾸밀 계획이었으나, 현재 보류 상태다.
생가 옆집에 사는 정원홍(52)씨는 "대통령 재임 당시 합천읍에서 생가를 지나는 곳으로 지방도가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동네에 별다른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 내천리를 포함한 율곡면 인구는 80년 당시 6천900여명이었으나 현재 2천900여명으로 줄었고, 당시 분교를 포함한 6개 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현재 1개 초등학교만 남았다.
◆대구 신용동, '20년 전 그대로'
노태우 전 대통령 고향마을의 경우 역대 대통령 고향 가운데 가장 변화가 없는 곳. 팔공산 순환도로 밑 자그마한 산골 동네이기 때문이다. 대구시 동구 신용동 생가 동네는 현재 50여 가구 2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20년 전에 비해 6, 7가구가 새로 터를 잡고 이사를 온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새 건물이 들어서거나 도로가 정비된 곳도 없다.
이 동네 주민 윤내옥(70)씨는 "동네 한가운데로 작은 개울이 흘렀는데 노 전 대통령 취임 몇 년 전에 이를 복개한 진입로가 생긴 것 외에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생가의 경우 기와 본채와 사랑채, 초가 헛간 등으로 이뤄졌는데 퇴임 후 5, 6년까지 동부경찰서에서 경비병력이 인근 초소에 상주하며 관리했으나, 이후 7촌 조카인 노재달씨가 가끔씩 돌보고 있다. 올 3월 김옥숙 여사가 생가를 둘러본 뒤 4월 종중에서 기와, 초가 등 지붕을 비롯해 생가 주변을 개보수한 상태다. 또 옛 경비초소를 개량해 생가 관리사무소와 화장실 등으로 새단장해 놓았으며, 향후 생가를 동구청에 기부채납한 뒤 구청에서 직원이 파견돼 관리할 예정이다.
◆거제, '기록관 들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는 2001년 예전 형태로 복원했다. 생가 안에는 YS 재임 시절 각국 정상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거나 함께 포즈를 취한 사진, 대학교 시절 성적표 등이 전시돼 있다. 집 앞마당에는 최근 중국 허난성(河南省) 한원비림(翰園碑林)에서 한중관계에 기여한 공로를 기념해 만든 YS 흉상도 세워져 있다. 사랑채에서는 먼 친척이 머그컵, 휘호액자 등 기념품을 파는 코너도 있다.
주변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건 생가 바로 옆에 건립 중인 YS기록관이다. 거제시는 시비 34억원을 들여 이미 공사에 들어가 내년 4월쯤 완공될 예정이다. YS기록관은 부지면적 955㎡, 연면적 557.2㎡, 지상 2층 규모이다. 이곳에는 전시관, 자료보관실 및 열람실, 휴게실, 사무실 등이 들어선다. 김 전 대통령이 쓴 붓글씨를 비롯해 다른 소장품들과 어릴 때부터 현재까지 사진을 포함한 영상자료를 받아 전시한다.
생가 마을주변도 변화가 눈에 띈다. 주변 주택 50여채 상당수가 새로 신축한 건물이며, 8년 전 경로당도 들어섰다. 생가 아래 바닷가 마을인 외포에는 8억원을 들여 위판장 건물을 짓고 있고, 멸치 직판장도 있다.
반금안(78)씨는 "대통령 했던 분이 태어난 곳이라고 직접 덕 본 것이 뭐 있겠느냐"며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항상 자부심이 가득하고, 뭐든 이뤄주겠지 하는 바람은 있다"고 말했다.
◆목포 하의도, '해안 일주도로 뚫어'
목포시 하의도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는 1999년 9월 김 전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던 시기에 복원됐다. 그 전까지 이곳은 마늘밭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생가는 '복원한 생가'와 '생가터' 두 곳으로 나뉜다. 생가터는 생가 옆에 따로 푯말이 있다. 돌을 쌓고 볏단으로 반죽한 흙을 섞어 얼기설기 만든 '죽담집'에서 김 전 대통령이 태어났기 때문. 생가는 원래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복원됐다. 복원 뒤 관리인이 따로 없어 2002년 방화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방화 사건이 있은 후 신안군에서는 '하의 3도 농민운동기념관'과 생가를 번갈아가며 관리하는 사람을 따로 뒀다. 생가 맞은 편에는 2005년 지어진 소금전시관이 염전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박용택(48)씨는 "1992년 대선에서 패한 뒤 김 전 대통령이 당시 1천300㎡ 규모의 마늘밭이었던 생가 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갔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하의도에는 최근에야 '해안일주도로'라는 명목으로 길이 닦이고 있었다. 일부 구간은 아직도 흙길이었다. '해안일주도로'라고 해도 바로 옆이 낭떠러지인데, 안전펜스마저 없다. 2천명 남짓한 주민들이 살고 있는 섬이라지만 주변 섬으로 나가려면 노를 저어 나가는 배를 타야했다. 하의도 당두 선착장에서 만난 한 70대 노인은 "연륙교를 건설한다는 얘기가 나온 지 15년은 됐지만 언제 만든다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며 "대통령이 나온 곳이라 더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혀를 찼다.
◆김해 봉하마을, '웰빙마을로 변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은 165억원이 투자돼 웰빙마을로 변신 중이다. 전직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마을 전체가 충격에 빠져있지만, 이 사업들은 계속 추진될 예정이다. 생가는 옛 집을 헐고 그 형태 그대로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 새로 짓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을 모시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봉하마을로 옮겨와 인구도 늘었다.
생가 앞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주민은 "노 전 대통령이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며 "주민들이 덕본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김해시에 따르면 마을입구 종합복지관(2층, 365㎡)이 건립되고, 마을 한복판에는 정자·생태연못이 있는 마을마당이 들어선다. 생태연못에는 수생식물이 자란다. 김해시는 또 2억원을 들여 내년까지 농촌생활 체험 프로그램 개발도 마치기로 했다. 이것이 봉하 웰빙 생태마을의 완성도다.
대통령 사저의 뒷산인 봉화산 일대도 산림청의 '산림 경영 모델 숲(웰빙 숲)' 대상지로 선정돼 내년까지 30억원이 투입된다. 마을 앞 화포천도 습지보호구역 지정이 추진 중이다.
김해시청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마을을 가꾸고자 하는 구상이 있었다"며 "김해시에서도 대통령이 탄생한 곳에 대한 개발에 소홀할 수 없으며 이미 계획된 일들은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 덕실마을, '관광지로 개발'
덕실마을은 따로 관리인이 없다. 주민들이 현재도 그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이명박 대통령의 생가도 두 곳으로 분리돼 있다. 포항시가 덕실마을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이 대통령이 살았던 적이 없던 4촌 형수의 집, 덕성리 561번지를 사실상 '생가'로 홍보하면서부터다.
포항시는 이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4촌 형수의 집 앞에 LED 전광판, 실크기의 철제 이명박, 관광안내소 및 안내판 등을 설치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생가는 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풍수지리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 세일즈맨의 신화가 된 이 대통령까지 형제의 대성공을 분석하려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 생가가 있던 곳인 흥해읍 덕성리 538번지에는 현재 이영두(72·여)씨 내외가 살고 있다. 1971년 이 터를 산 뒤 2005년 집을 지어 살고 있는 이씨는 이 대통령이 당선된 뒤인 2008년 2월부터 이곳을 생가터로 알리고 있다. 생가를 찾는 이들이 많아 농사를 짓던 주민 일부가 가건물을 설치해 상점 몇 곳을 열기도 했다.
김병구.권성훈.김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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