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존엄사에 관하여

비공식 실행 많지만 기준도 없어 인정'시기'방법 등 立法化 절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인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용하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 '존엄사'에 관하여 이런저런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담당 의료진이 6월 23일 김 할머니로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산소 포화도, 호흡, 맥박 등 김 할머니의 생체지수가 비교적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자 일각에서는 '과연 존엄사를 인정하는 것이 옳은가'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소위 '소극적 안락사', 즉 '존엄사'라는 것은 '사망'이라는 사건 발생의 측면에서 바라본 용어로 이를 권리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존엄하고, 고귀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존엄사에 관한 논의'는 '존엄하고 고귀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 위와 같은 권리를 인정한다면 어떠한 경우에, '환자가 위와 같은 권리를 행사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인지 여부, 환자가 이와 같은 권리를 행사하였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면 어떠한 시기에, 어떠한 방법으로 존엄사를 실시할 것인지 여부라는 세 단계의 각 쟁점으로 구분,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존엄하고 고귀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보건대,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의 한 영역임과 동시에 삶의 마지막 과정에서 겪게 되는 삶의 또 다른 형태(서울고법 판결 중 일부 발췌)'라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라는 최상의 理想(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 범위 내에서는, '생명권'도 '자기결정권' 행사의 객체(대상)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尊貴(존귀)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실현'이라는 목적범위 내에서는 '누구나 허용되는 권리'라 할 것이다.

둘째, '어떠한 경우에 환자가 존귀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보자. 존엄사의 의미, 방법, 과정 및 결과를 충분하게 이해한 환자의 자발적인 의사 표명만 있으면 후술하는 바와 같은 구체적인 시기가 도래하였을 때, 사회통념상 수긍이 가능한 윤리적인 방법에 따라 존엄사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환자가 의식이 명확한 상태에서 '사전의료지시서' 또는 '민법이 정하고 있는 유언의 엄격한 방식' 등의 방법을 통해 위와 같은 권리행사에 관한 意思(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하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 그렇지만 혼수상태에 빠져 의식이 불명확한 상태에 있는 환자의 경우 그 환자가 과거에 취해왔던 태도를 기초로 '그 환자가 의식이 명확하였다면, 위와 같은 권리를 행사하였을 것'이라는 사정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 즉 '추정적 의사'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문제된다. 그러나, 삶에 대한 환자의 진지한 의사가 '추정적 의사'라는 명분을 통해 왜곡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철저히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환자의 日記(일기), 종교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제3자의 증언 등 객관적이고 신빙성 있는 증거를 통해, 환자가 과거에 취해왔던 태도가 엄격하고, 명백하게 인정되지 않는 이상, 위와 같은 '추정적 의사'를 인정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이와 같은 점에서 필자는 김 할머니의 가족 및 지인들의 증언을 기초로 김 할머니의 '추정적 의사'를 인정한 대법원의 다수 견해에 반대한다).

셋째, '어떠한 시기에, 어떠한 방법으로 존엄사를 실시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보면 존엄사를 실시하는 방법에 관해 사회 통념상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방법, 즉 불필요한 생명 연장장치(김 할머니의 경우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실시하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시기에 관하여 대법원의 다수 견해는 '회복불가능한 사망 과정에 진입하였을 때'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 과정에 진입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해당 환자를 곁에서 지켜봐 온 담당 의료진의 판단을 가장 존중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비공식적인 존엄사가 많이 실행되는 현실이나 이에 관한 일정한 기준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 존엄사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토대로 한 신중한 입법이 조속히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경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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