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좋을 것 같지만 부담과 고민이 많습니다. 편한 인생은 포기해야 합니다."
선대가 창업한 기업을 물려받기 위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2,3세 경영인들. 하기좋은 소리로 바깥에선 '정상 등극이 예정된 황태자'들로 시샘반, 부러움반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이들에게는 책임과 중압감으로 다가오고, 때론 인정받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만 한다. 전문경영인이나 부친인 창업자의 그늘 속에서 늘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고 조심스럽다.
대구상공회의소가 지난해 4월 발족한 차세대 CEO포럼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웅기(47) 조양모방 대표이사. 창업주 민병오 회장에 이어 20여년전부터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CEO에 오른 2세 경영인인 민 대표는 이 포럼의 맏형이다.
"부친이 워낙 부지런해 따라가기가 힘들었습니다. IMF위기를 잘 넘기고 나니까 그때서야 인정해주더군요."
민 대표는 1989년 총무계장부터 출발, 당시 노사분규가 극심할 때 현장에서 뒹굴며 '노가다 반장'을 해야만 했다. 공장에 벽돌·시멘트 쌓는 것부터, 또 직접 트럭을 몰려 자재를 구입하러 다녔다. 아침 7시에 출근하고 퇴근은 일정하지 않은 개미같은 생활을 수년간 했다. 유통을 배우기 위해 원사대리점을 맡아 공장을 상대로 영업을 했고, 경영기법을 배우기 위해 미국에서 MBA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10여년간의 경영수업 끝에 IMF를 무사히 넘기자 부친은 비로소 민 대표를 인정했다고 한다.
"2, 3세 경영인들은 공통적으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최소한 현 수준을 유지하는 수성은 기본이고 창업세대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업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물려받은 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데 고심하고 있습니다."
민 대표는 차세대 CEO포럼 회원기업 2, 3세 경영인들 모두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것이 쉽잖아 중압감이 크다고 했다. 회원끼리 서로 경험담과 실패담을 주고 받고, 함께 고민한단다.
민 대표는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고 이병철·정주영 회장과 강덕수 현 STX그룹 회장을 들었다. 이병철, 정주영 회장은 척박한 기업토양에서 '맨주먹 붉은 피'로 회사를 창업하고 성장시켜 글로벌 기업을 만들었고, 강 회장은 앞을 내다보는 혜안과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안목으로 기업을 10대그룹에 진입시킨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이유에서다.
민 대표는 기업이 성장하면 서울로 이전하기 일쑤인데 그래도 고향에 뿌리를 박고, 대구경제를 지켜나갈 차세대 CEO들을 애정있게 봐달라고 주문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요. 청출어람을 꿈꾸는 재계 2~3세들을 지켜봐주십시오. 머지않아 대구경제를 떠받칠 주역으로, 선대들보다 더 지역과 함께 하는 경영으로 새바람을 일으키겠습니다."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차세대 CEO포럼
일종의 차세대 CEO 사관학교다. 창업주의 고령화 등으로 경영승계가 본격화되면서 대구상의가 차세대 CEO들에게 신경영기법과 고급경영정보를 제공, CEO 자질을 키우고 지역경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딩그룹으로 만들기 위해 마련한 포럼이다. 지역기업의 20~40대 CEO와 창업주 2, 3세대 60여명이 회원으로 분기별로 정기 세미나를 열고 경영특강과 우수기업 탐방 등을 통해 CEO자질을 함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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