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착한 사회를 그려보자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과 야구장에 간 적이 있다. 스포츠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으니 야구경기 관람도 아들과의 약속 때문이다. 야구장에서 전혀 다른 아들을 발견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4시간을 서서 응원한다. 응원하는 눈빛이 반짝거린다. 이처럼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하면서 빛날 때가 있다.

감나무골공동체, 와룡배움터, 희망품앗이, 앞산달빛공간, 우리마을학교, 아띠도서관, 작은학교, 희년공부방, 한들마을도서관, 옻골문화공동체, 더불어숲, 간디문화센터, 전통문화 지킴이. 이런 이름을 가진 단체들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 모두 대구 지역에서 수년간 활동해 온 대표적인 풀뿌리 공익단체(또는 공익활동단체)의 이름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생소한 공익 활동은 우리가 눈여겨 보지 않는 사이에 곳곳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 그야말로 들판의 풀처럼 강인하고 열심히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풀뿌리 공익활동은 무엇인가? 풀뿌리 공익활동은 시민운동의 성장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시민운동과는 다르게 동네(혹은 마을), 주민, 생활, 아이들(미래세대), 공동체 등의 가치를 지향하면서 발전해 왔다. 과거에는 풀뿌리 주민운동이라고 불렀지만 현재 활동 사례들을 살펴보면 활동 주제, 가치 등에서 매우 다양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주제로 시작했다가 '동네'로 활동 범위를 확장하거나,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모임으로 시작했다가 '로컬푸드' 운동으로 발전하는 등 작은 동네에서 종합적이면서 센터형, 네트워크형으로 발전하고 있다. 몇 개월간 필자가 풀뿌리 공익활동을 탐방하면서 느낀 점이다.

풀뿌리 공익활동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활동이 모두 마을이나 동네, 즉 생활공간에 근거를 두고 거기서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으로 활동가와 주민의 경계가 엷다는 점이다. 주민이 활동가이고 활동가가 그곳에서 살면서 주민이 되는 식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좀 더 집중해서 활동하고프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또 활동의 대부분의 내용이 아이들 교육 문제, 먹을거리와 로컬푸드, 생태환경, 전통문화, 커뮤니티 형성, 문화공간 마련 등으로 집중되고 있다. 생활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문제지만 결코 개인적인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동네 주민 공동의 힘으로 해결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활동의 방식에서는 많은 대화와 의논이 있고 자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동네마다 문화+작은 도서관+작은학교+돌봄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있다면. 한번쯤 나 아닌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고 싶을 때 그것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손쉽게 작은 단체를 만들 수 있다면. 이러한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기업이나 지방 정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장려한다면.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하며 빛날 때 그런 사회는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착한 사회가 아닐까.

최근 몇 년 사이 지역 사회에서 동네 어린이도서관 설립 운동, 작은학교 만들기, 주민공동체 형성, 공동으로 먹을거리 해결, 주민들의 공동 공간 마련 등 풀뿌리 공익활동이 과거에 비해 활성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수와 다양성, 주민들의 관심, 지방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뭔가 활동을 하고 싶지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활동할 공간이 없어서,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공익적 기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주민들의 풀뿌리 공익활동이 번성하지 못하고 있다. 250만 명이 사는 도시라고 하기에는 공익 활동이 지나치게 적다고 할 수 있다. 시민이 나와 가족만이 아니라 동네와 우리를 위해 활동할 여건을 성숙시켜야 한다. 최근 1, 2년 사이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역행하여 현저히 줄어드는 추세이고 지방 정부도 시민사회와 협력과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어 우려스럽다. 이제 자치단체나 기업은 동네에서 마치 샘물처럼 공동체를 살리는 풀뿌리 공익활동을 장려하고 육성하는 노력을 보여줄 때이다. 공익이 넘실거리는 사회, 착한 사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신나지 않는가!

윤종화(대구시민센터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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