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

이덕일의 시대에 도전한 사람들/ 이덕일 /한겨레 출판

이덕일의 '시원하게 나를 죽여라'라는 책을 읽으며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문제적 인물들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 본다. 시대의 주류이론과 지배담론에 도전하거나 스스로 개혁의 주창자가 된 인물들, 혹은 군사를 모아 반역에 나선 인물들까지 두루 망라돼 있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삼봉 정도전은 중화가 시대의 대세일 때 토지개혁을 주도하고 요동 정벌을 추진한 인물이다. 조선시대 북벌의 뜻도 없으면서 모두가 말로만 북벌을 주장할 때 주화론을 제기한 이경석, 성리학이 대세인 시대에 스스로 양명학자임을 밝히고 나선 정제두, 서얼자식으로 태어나 발해를 우리 역사에 편입할 것을 주장한 유득공 같은 인물들. 과거를 포기한 후 세상을 향해 붓 대신 칼을 들고 나선 홍경래, 천주교 순교자인 정하상, 동학농민혁명의 수장 중 한 명인 김개남 같은 흥미로운 인물도 등장한다. 시대의 지배적인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변화와 개혁을 주도한 인물들이다.

멀리 신라시대 인물로 진골이 아닌 육두품으로 태어난 탓에 신라에서 뜻을 펴기 힘들 것을 알고 열두 살에 당나라로 유학해 과거에 급제한 최치원의 삶도 새롭게 읽힌다. 당나라에서 벼슬할 때 쓴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보고 황소가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글을 잘 썼다는 최치원. 하지만 신라에 돌아온 그는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야인으로 떠돌게 된다. 민중들이 얼마나 그것을 안타깝게 여겼으면 사찰이나 경관 곳곳에 최치원에 관련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을까.

실학의 원조로 알려진 조선 후기 성호 이익의 삶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이익은 부친과 형을 당쟁으로 잃은 뒤 과거에 뜻을 버리고 농사를 지으면서 학문을 닦게 된다. 그는 농경에 종사하면서 그 시대 사대부들이 천시하는 노동의 철학을 갖게 되고, 사회개혁을 주장한다. 몸소 농사의 어려움을 아는 자 가운데 덕망 있는 인재를 등용할 것과 균전제를 주장한 것이다. 균전법은 일정 규모 이상 농토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여 토지의 집중을 막자는 것이다. 이익은 정치의 본질은 '보민'(保民)이라면서,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정치라고 보았다.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주장한 것이다. 주자학을 뛰어넘어 서학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을 정도로 열려 있었으며, 사대부만이 아니라 서얼'농민'나아가 노비까지도 등용하자는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익의 이런 주장들은 그 시대의 상식을 뛰어넘었고, 그의 사상 역시 주자학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이익을 높이 평가하고, 그가 추구하는 바가 공자'맹자에 접근했으며, 자신들이 천지가 크고 일월이 밝은 것을 알게 된 것은 모두 이 선생의 힘이라고까지 말했다. 이익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모두 버리고 중국인이 되기 위해 광분하던 소중화 시대에 '동국은 다름 아닌 동국이다'라고 하는 사상의 주체성을 확고히 지니고 있었다. 한평생 불행으로 점철된 인생이었지만, 그가 스스로 농사지으면서 세웠던 사상 체계는 조선 후기 철학의 혁명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들의 개혁정신이 제대로 반영되었다면 조선이 식민지라는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다.

소수에 의해 독점된 부와 권력은 배고픈 자들의 분노와 저항에 직면하기 마련이고 변화와 개혁의 외침에 귀 막는 권력의 앞날은 길지 않을 것이다.

백성을 위한 큰 뜻을 세워 개혁정치를 펴고자 소망하였던 이들의 꿈은 번번이 좌절되지만 그들의 큰 뜻은 후세에 길잡이가 된다.

자신과 가족만을 위한 안주적인 삶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고 백성을 위해 큰 뜻을 세우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역사 속 과거 인물들의 삶은 당대의 삶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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