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구속-허상에 관하여'. 제목이 그럴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 구속되지만 알고 보면 그 욕망은 덧없는 허상이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이런 뜬 구름 잡는 이야기를 과연 어떻게 미술로 표현한다는 말인가. 리안갤러리에서 9월 2일까지 열리는 전시를 찾은 관객들은 젊은 작가들이 기발한 발상으로, '욕망, 구속, 허상'을 표현하는 기법에 깜짝 놀라게 된다.
2층 전시장부터 둘러보자. 홍일화(38)의 작품 'Elles II'는 관객을 민망스럽게 한다. 젖가슴이 보일락 말락 드러나고, 바람결에 날린 치마와 엉거주춤 앉은 바지 뒤춤으로 끈 팬티가 보인다. 여성 잡지에 등장하는 패션 모델이나 유명 인사의 모습을 순간 포착한 유화 작품. 관객의 엿보기 심리를 농락한다. 하지만 농락의 주체는 그림 속 인물들인가, 아니면 작가인가.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관객은 작품이 좋아서인가, 아니면 은근히 즐기고 있는가.
김민경(29)의 작품 제목은 'Camouflaged selves', 즉 '위장된 자아'라는 뜻이다. 똑같은 얼굴의 여인이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가발을 쓰고 있다. 포커 페이스로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은 보호색을 갖는 동물처럼 각자 위장술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그런 위장술 속에서 자기 자신도 스스로의 본 모습이 무엇인지 잊는다는 것이다.
지하 전시실은 신화와 빛, 시간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대상을 담은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박진호(40)는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그래픽으로 형상화했다. 바닥을 장식한 흑백 그래픽도 마찬가지다. 미로를 이루는 선들은 모두 핏방울 형상들로 채워져 있다. 동물의 다리를 가진 침대에서는 검은 피가 뚝뚝 흐르는 듯하다.
최수환(38)은 플랙시글라스(plexiglass)나 종이에 서로 다른 크기의 무수히 많은 구멍을 뚫어 이미지를 만든 뒤 그 구멍 사이로 빛을 내보내는 작품을 선보인다. 채움이 아닌 비움으로써 작품은 형상과 색을 갖는다. 그 옆에는 플러그가 뽑힌 선풍기가 놓여있다. 하지만 그림자 속의 선풍기 날개는 열심히 돌아간다.
시공간을 표현하는 작가 하광석(40)은 '그림자의 실체'라는 영상 설치 작품을 내놓았다. 불 꺼진 초, 하지만 그림자 속의 촛불은 바람에 일렁인다. 모든 것이 허상이다. 053)424-2203.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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