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영화와 모방범죄

앨프리드 히치콕의 1960년 영화 '사이코'(Psycho)에는 뒷얘깃거리가 많다. 이미 죽은 어머니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살인을 하는 줄거리나 주연격인 여배우가 영화 초반에 살해당하는 것도 생소했다. 남우 안소니 퍼킨스는 이 한 편으로 명배우 반열에 올랐지만 평생 이 이미지를 깨지 못해 평범한 배우가 됐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여배우가 샤워 중 살해되는 장면이다. 직접적인 모습은 없었지만 샤워 커튼의 그림자를 통해 흉기를 휘두르는 장면과 물과 피가 뒤섞여 배수구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은 스릴러의 대표 장면이 됐다. 당시 많은 관객이 비명을 지르고 구토와 실신을 했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요즘으로 치면 사이코는 스릴러물은커녕 어린이도 심심해 할 정도의 수준이다. 잔혹성에서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잔혹성에 길들여진 관객은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요구한다. 관객은 가상 현실을 통해 자신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폭력성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반면 감각은 무뎌진다. 영화와 현실을 혼동한 모방범죄가 일어나거나 폭력 영화에 심취한 사람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다. 2007년 3월 인천의 어린이 유괴 살인 사건은 영화 '그놈 목소리'를 본떴고, 2000년 발생한 명문대생의 부모 토막 살인 사건은 그해 개봉한 영화 텔미 섬씽을 연상케 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80년대부터 애니메이션을 모방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17일에는 30여 년을 길러준 양어머니를 청부 살해한 패륜아가 사건 발생 1년여 만에 붙잡혔다. 수십억 원을 도박으로 탕진한 뒤 양어머니가 남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하자 청부 살해한 것이다. 숨진 양어머니는 길에 버려진 아이를 1975년부터 애지중지 키웠다고 했다. 이 사건에서 영화 '공공의 적'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사업 자금과 도박 자금, 직접 살인과 청부 살인, 친부모와 양어머니라는 차이가 있음에도 부모 살해라는 모티브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예술의 한 장르다. 하지만 주제에 따라서 그 파장이나 폐해도 만만찮다. 영화 줄거리와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개인 탓을 하기엔 뭔가 미진하다. 예능 프로그램의 구호를 한마디 베낀다.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로) 착각하지 말자."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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