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심령수사/제니 랜들스'피터 휴 지음/이경식 옮김/휴먼 앤 북스 펴냄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딕시 예테리안은 살인 현장을 보는 꿈을 꾸었다. 나무로 지은 낡은 오두막 안에서 남자와 여자들이 모닥불을 가운데 놓고 둘러 앉아 있었다. 14세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남자들이 차례로 소녀를 강간하고 칼로 몸을 훼손했다. 마치 소녀를 대상으로 기괴한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서로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이름도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소녀가 달아나자 남자 두 명이 쫓아갔다. 달아나던 소녀의 신발 한쪽이 벗겨졌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까지 달아난 소녀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멈추는 자동차는 없었다. 결국 소녀는 쫓아온 남자들에게 살해당했다. 남자들은 소녀의 시신을 해안 쪽으로 가서 도랑에 버렸다. 딕시는 마치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다니듯 살인 현장을 보았다.

딕시는 이 악몽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모두들 '악몽이니 잊어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 딕시를 찾아온 친구들이 신문 한 장을 내밀었다. 신문의 표제는 '이 소녀를 아십니까?' 였다. 딕시는 죽은 소녀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수사가 진행되자 경찰은 오히려 딕시를 의심했다. 당시까지 수사 결과물과 딕시의 진술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딕시의 진술을 바탕으로 오두막을 찾아내고, 그 오두막에서 법의학적 증거들을 확보한 뒤에야 의혹을 풀었다.

몇 달 간의 수사 끝에 범인들은 모두 체포됐다. 이들은 그때까지 30명이 넘는 젊은 여자를 종교적인 의식으로 살해했다.

딕시 이야기는 이 책 '심령수사'에 실린 하나의 예다. '범죄 수사에서 활약한 심령술 형사들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범죄 사건에서 심령술의 도움, 심령술 형사, 수사에서 직감, 미제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심령술, 심령술 형사의 위험 등 심령 수사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심령 수사에 이용되는 도구와 죽은 영혼의 진술 등도 있다.

미국에서 심령 수사는 범죄 수사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경찰은 심령 수사의 도움을 발표하지 않거나 사소한 부분으로 취급한다. 과학의 시대에 심령 수사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비웃음을 부르기 때문이다. 특히 심령적인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꺼리는 일반인의 정서를 고려해 심령 수사의 흔적은 공식적인 기록에도 남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령술 능력을 가진 사람은 고대 문명권에서는 예지자로 존경받았고,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 혹은 마법사로 처형당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평가는 달라졌지만 심령술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책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초능력자 유리 겔러나, 세계적인 영매이자 심령술사 로버트 제임스, 제라드 크로이셋, 에일린 개렛 등이 실제로 해결한 범죄도 소개하고 있다. 200장이 넘는 사진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심령 수사'는 '최면 수사'와는 다르다. 최면을 이용하는 수사는 이미 목격했지만 희미해진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도록 유도한다. 심령 수사는 목격하지 않은 사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 등을 꿈, 텔레파시, 환상처럼 보는 것이다. 심령 수사는 미제 사건, 연쇄살인, 납치, 암살, 테러 등을 해결하거나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284쪽, 2만9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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