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즐거운 책 읽기]에드바르 뭉크(수 프리도/을유문화사)

천재예술가의 고통스러운 삶의 기록

가끔 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하다. 위대한 예술가,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의 삶과 그들이 산 시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에 대해. 그럴 때 평전을 읽는다. 뭉크의 '절규'를 처음 보았을 때 감전되는 듯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폐부를 찌르는 듯 강렬한 느낌. 마침 이번에 뭉크의 평전이 나와 읽게 되었다. 저자는 수 프리도, 뭉크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던 인물이다. 이 책은 평전을 문학작품의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격찬을 받았다. 한 인물의 생애를 따라간다는 것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데, 이 책은 뭉크의 삶의 지도를 따라가면서 훌륭한 문학작품을 읽는 재미를 아울러 준다.

1380년에서 1814년까지 노르웨이는 덴마크의 속국이었다. 이 시기에는 고대 노르웨이어의 사용이 금지되었고, 모든 공식 업무는 덴마크에서 이루어졌다. 뭉크의 큰아버지는 페테르 안드레아스 뭉크로 노르웨이의 자주적인 역사를 입증한 인물이다. 그는 위대한 역사가였고, 그의 죽음은 국장으로 치러졌다. 친가는 명문가였고 위대한 예술가를 두 명이나 배출한 반면, 뭉크의 외가는 폐결핵을 앓은 이들이 많았다. 뭉크의 어머니는 뭉크가 다섯 살, 누나 소피가 여섯 살 때 다섯 아이를 남긴 채 폐결핵으로 죽었다. 가족 중 뭉크와 가장 가까웠던 누이 소피도 열다섯 살에 폐결핵으로 죽는다.

뭉크 자신도 열세 살에 거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뭉크 형제를 키워주고 궁핍한 집안 살림을 돌본 것은 이모인 카렌이었다. 그는 뭉크 가족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았다. 뭉크의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독실하고 엄격한 신앙인으로 뭉크와 자주 충돌했다. 뭉크가 스물세 살 때 아버지도 뇌졸중으로 죽게 된다. 뭉크의 여동생 중 하나인 레우라는 한평생 정신병에 시달렸다. 뭉크의 남동생은 의사로 건강한 편이었는데, 결혼하고 얼마 후 폐렴으로 죽는다. 뭉크는 폐결핵이라는 질병의 위협을 자주 받았고, 집안의 병력 중 하나인 광기의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그의 작품들은 종종 광기에 사로잡힌 자의 그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뭉크와 가까웠고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들은 선구적인 예술가들이었지만, 당대에는 평판이 좋지 않았다. 뭉크 주변에는 팜므파탈이라고 볼 수 있는 몇 명의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명문가의 부인들이지만 잘나가는 예술가들을 애인으로 끊임없이 갈아치우는 인물들이다. 뭉크는 이들 중 몇 명과 연인관계이기도 했다. 밀리, 오다, 다그니 같은 여인들은 한때 그의 연인이자 모델이기도 했다. 뭉크의 그림들은 조국 노르웨이에서 엄청난 혹평을 받았으며, 베를린에서 초청전시회를 했을 때는 일대 소란을 일으켜 문화부장관이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무시, 경멸, 비난이 잇달았다.

1891년에 그려진 '카를 요한 거리의 봄날'이라는 작품에 대해 의사들은 이런 그림을 보면 수두처럼 반점이 생기는 질병에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할 지경이었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뭉크는 인기 있고 잘 팔리는 작품을 그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세계를 추구하였다.

"숨 쉬고 고통스러워하고 느끼고 사랑하는 진짜 사람들을 그리겠다"고 하였고, 인상주의를 시각적 경험으로서의 테크닉은 흥미롭지만, 정서적인 경험으로서는 공포스럽기 짝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은 '영혼의 미술'(soul art)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 스트린드베리, 예게르 등이 그와 가까웠던 인물들이다. 뭉크는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로댕, 고흐, 고갱,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 등의 영향을 받거나, 그들과 동시대의 공기를 호흡하였다. 생애의 후반부를 거의 독일에서 보낸 뭉크는 1943년 독일에서 세상을 떠났다. 나치는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그가 죽은 후에 그토록 사랑하던 가족과 나란히 묻히지 못하게 했다.

신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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