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머에 나오는 공무원 놀이는 뭘까.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비슷한 의미의 또 다른 유머다.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했다. 멋진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공무원의 말이 끝나자 그는 곧바로 아름다운 해변에 와 있었다. 밀어를 속삭일 늘씬한 미녀를 원하자 두 번째 소원도 금방 이뤄졌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항상 느긋한 휴식을 즐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공무원은 어느새 자기 사무실로 돌아와 있었다.
잘나가는 청와대 수석에게 은퇴해 시골서 사는 선배가 하소연을 해왔다. 제멋대로 심어진 뒷산 나무를 간벌하려고 윗사람을 만났더니 '좋다'고 하는데 담당 공무원이 규정에 얽매여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수석이 편한 말로 대꾸했다. 규정을 벗어나 허가를 해준다면 담당자에게 이득이 있는가. 물론 있을 게 없다. 너도나도 해달라면 선배가 나서서 막아줄 것이냐. 의혹이 일어 사정기관이 계좌라도 뒤지면 이리저리 얽힌 친지까지 의심을 받게 되고 더 나가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져 줄 수 있는가. 그 선배는 내가 잘못했다며 포기했다고 한다.
공무원을 헐뜯거나 편들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무원에게 요구하는 덕목에는 양면성이 있다. 능동적이고 앞서가는 행정을 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법 테두리를 벗어나지 말도록 한다. 규제의 불편을 방치했다 해서 문책받는 일은 드물지만 따져 보니 일리가 있다고 규정을 벗어나다간 칼날을 맞기 쉽다. 덕 본 사람이야 고마워하겠지만 '빽이 없어서' '돈을 주지 않아서'라는 불만이 생기는 게 현실이다.
도시 개발이 한창인 어느 광역시의 단체장은 개발 계획 기안 서류에 아예 담당자의 결재란을 없애고 자신만 결재한다고 한다. 나중에 시비가 걸리면 자신이 모두 책임지겠다는 의지다. 단체장의 의지가 복지부동 대신 능동적인 행정을 가져오고 있다는 자랑이다.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지역 토착 비리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데 이어 감사원장도 지자체의 인허가 비리를 집중적으로 살피겠다고 한다. 합법적인 일을 주민들이 반대한다고 주저하거나 표를 의식해 업무를 미루는 행태도 점검하겠다고 덧붙였다. 비리와 복지부동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묘책을 기대해 볼까.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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