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부잣집에 갈 때에는 비싼 물건을 사 가지고 가고, 가난한 집에는 아무것이나 사 가지고 가지? 부자라고 해서 자기네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는 것도 아닌데."
학교 교육을 받지 않으신 내 어머니는 늘 생활 속에서의 질문을 직선적으로 뽑아내신다. 어머니 눈에 우리 사회에서 선물을 고르는 관행이 눈에 띈 것이다. 사실 우리는 선물을 고를 때 '내 여유'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고려되는 점이 상대방에게 필요한 물건을 구하고자 하는 배려이다. 그러다 보니, 교수에게 선물을 하려면, 좀 더 돈이 많이 들고, 학과 친구들에게는 비용이 조금 덜 들어도 쓸 만한 물건이 떠오르기도 한다.
또 선물의 실용도를 따지다 보면, 그 단위가 커지기도 한다. 때로는 뇌물과 선물 사이의 구분이 애매할 정도가 되기도 한다.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다. 은사님들께 인사 드리러 가겠다고 나서는 나를 어머니가 불러 세우셨다. 아무래도 빈손으로 나가는 내가 걱정스러우셨는지, 선물은 무엇을 준비했느냐고 물으셨다. 열쇠고리와 책상 위에 놓는 마스코트를 하나씩 갖다 드리겠다고 답하자, 어머니는 욕먹는다며 말리셨다. 욕은 몰라도 외국물 먹었다는 평을 듣게는 될 것이다.
그보다 눈에 두드러지는 우리 사회의 특징은 시대에 따라 선물이 유형화하여 상품화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언론에서는 10년 단위로 유행되었던 명절 선물 품목을 되짚으면서, 재미삼아 사회 변화를 진단한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는 개인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날의 선물도 상품화되어 있다. 어버이날 선물에는 카네이션, 밸런타인 데이에는 초콜릿, 화이트 데이에는 사탕 바구니, 스승의날에는 손수건과 넥타이 등으로 정형화되어 간다. 어버이날 근처나 스승의날 근처에 백화점을 가보면 올해 받을 상품이 대략 무엇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날의 선물에는 일종의 유행이 있기는 했어도 한동안은 쌀, 달걀 한 꾸러미, 쇠고기 등등 본인들이 직접 마련한 물건들을 가지고 가서 인사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선물 세트, 80년대부터는 상품권이 일반화되더니, 2000년대 들면서는 또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인터넷 홈쇼핑을 통해 선물하고 있다. 선물을 골라서 들고 찾아가는 대신, 배송업체를 통해 전달한다. 받는 이도 고맙다고 전화로 인사할 뿐이다.
선물이란 개인 간의 관계 속에서 어떤 계기를 빌려 드러내는 마음의 표시이다. 이것이 유형화되어 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이는 사회에서 인사를 차린다는 관행이 중요시되고 있으며, 그 인사의 범위가 매우 넓다는 말일 것이다. 한국인들이 외국에 갔다 귀국할 때 선물을 많이 사는 축에 속하는 것도 이러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어라 해도 선물이 형식화되어 간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제대로 된 선물은 자신의 또 다른 표현이며, 상대방과의 새로운 관계 개선이 될 수 있음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아동문학가 이원수가 추억 속의 선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중학교 시절이었단다. 어느 여학생이 손수건에 쌓인 사과를 한 개 내밀더란다. 사과 위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즉 여학생은 사과가 열렸을 때 먹으로 그의 이름을 써서 여름 내내 그 이름 위로 햇빛이 차단되도록 했다. 그 노력으로 사과가 익었을 때, 빨간 사과에 노란색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길 수 있었다. 그 사과를 받아 든 중학생의 감동은 어떠했을지…. 그 아이디어는 오늘날 상품화되고 있을 정도이다.
선물은 '삶의 덤'이기 때문에 조금은 앙증맞고, 조금은 낭만적이거나 순간적이어도 좋을 듯하다. 선물의 내용보다는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를 즐거워하며, 감동에 남는 선물을 만들려는 노력은 새 생활의 창조이리라.
김정숙 영남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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