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부터 10월 7일까지 리안갤러리에서 화가 김종복(80)의 초대전이 열린다. 지역에서 8년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는 60년 화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 작가에게도 소중함의 의미는 남 달랐다. 두 차례 교통사고 후유증에다 지난봄에 심장 수술을 하고 당뇨까지 앓고 있는 터에 심한 감기 몸살까지 겹친 상황. 하지만 60여년간 치열하게 고독을 벗 삼아 그림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작가의 열정은 이런 육체적 불편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작품집 제작 디자인부터 인쇄까지 담당자들이 진저리를 낼 정도로 꼼꼼하게 챙겼다. 전시 개막일에 입겠다며 두달 전에 디자이너 박동준을 찾아갔고, 해외와 서울로 도록을 서둘러 보내야 한다며 작품집 300부와 엽서 150장을 8월초에 이미 보내버렸다. 덕분에 전시를 2주일 앞둔 시점에서 작품 문의가 오기 시작했다. 전시 작품을 고르는 작업도 수월치 않았다. 먼지가 풀풀 나는 작업장에서 마스크와 앞치마까지 두르고 일일이 작품 꺼내는 일을 확인하고 따로 기록했다.
과연 이것을 그저 원로 작가의 고집쯤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고독'이라고 답하는 작가 김종복. 그는 이 시대 작가가 걸어야 할 길을 오롯이 디뎌왔다. 그림을 배우려고 고깃배를 타고 밀항까지 하며 일본 도쿄를 찾아갔고, 나이 마흔이 넘어서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이응로, 이성자 화백 등과 교분을 나누었으며, 한창 주목 받던 시기에 파리 화단을 떠나 귀국했다. 그는 '지독스런 고집과 열정'으로 한평생을 살아왔다. 이유도 없이 작품 기증을 요구하는 협회나 동료 작가들의 태도가 싫어서 작가회나 그룹전도 마다했고, 그림값을 흥정하는 것은 작가의 자존심을 깎아낸다며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했다. 한 번은 어떤 기업체에서 알아서 그림 값을 깎아서 넣어온 봉투를 내밀기에 두 말없이 바닥에 던져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김종복을 타협을 모르는 괴팍한 원로 화백으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 2008년 작 '달의 사막'을 보자. 초승달이 걸린 보랏빛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넉넉한 산처럼 느긋하게 올라선 모래 봉우리. 그 아래 낙타를 타고 지나가는 두 남녀가 있다. "중학교 시절 배웠던 일본 노래 중에 '달의 사막'이란 게 있었습니다. 왕자와 공주가 달밤에 떠나는 긴 여행을 노래한 곡이죠. 그 시절 무작정 사막을 가고 싶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고, 작년에 그걸 그려봤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있던 상상의 풍경이죠." 7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작가는 소녀시절 가슴 설레게 품었던 그 추억을 되살려냈고, 그것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노 화백은 사춘기 소녀 시절로 돌아가 마냥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붓질을 했을 터이다. 이번 리안갤러리 전시에서는 1960년대 과감한 구도와 굵은 윤곽선, 그리고 상징적인 색채로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과 1970년대 프랑스 유학길에 다시 오르면서 프랑스, 스페인, 이집트, 이탈리아 등의 풍경을 분방한 필치와 화려한 색감, 과감한 형태의 단순화와 왜곡 등으로 표현한 대표작들이 소개된다. 1990년대는 색면과 선들의 약동이 보다 강렬해지는 한국의 산을 주제로 한 200호 크기의 대작이 전시되며, 추상화되고 단순화된 풍경에 심상이 더해진 2000년대 작품도 선 보인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김종복은
1930년 대구에서 태어난 뒤 1950년 경북여고 졸업과 동시에 한국전쟁이 발발, 국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56년 일본에 유학해 회화 수업을 받았다. 1972~1975년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했고, 귀국 후 1976~1995년까지 대구가톨릭대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74년 프랑스 도빌 국제전 대상, 1976년 프랑스 국립미술연감 작품 수록, 1985년 대구시 문화상 수상, 1991년 제2회 최영림 미술전 수상 등의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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