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향사례

오는 29일은 음력 8월 열하루로 중정일(中丁日), 즉 두 번째 정(丁)일이다. 도산서원에서 향사례(享祀禮)가 올려지는 날이다. 음력 2월 중정일에 봉행하는 춘향(春享)에 이은 추향이다.

올해부터 도산서원 향사례는 크게 바뀌었다. 무엇보다 향사례를 올리는 시간이 변경됐다. 축시(丑時) 시작 무렵, 즉 한밤중인 오전 1시에 향사를 거행해 왔는데 올해부터 대낮인 오시(午時) 첫머리, 오전 11시에 시작한다. 1574년 음력 2월 첫 향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니 435년 만의 일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퇴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제사로서 기능도 중요하지만 후학들에 대한 교육의 효율성을 무시할 수 없어 취해진 변화라고 한다.

향사를 참관하는 것도 수월해졌다. 과거에는 망기(望記)나 회문(回文)이라고 해서 유림의 승락을 받은 이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육적 측면이 강조되면서 일반인이라도 별도의 절차 없이 참관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체육복이나 슬리퍼같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 차림은 기본적인 예의 문제라 하겠다.

향사를 치르는 기간도 짧아졌다. 유사(有司)나 헌관(獻官)을 비롯한 모든 제관들이 사흘 혹은 적어도 이틀 전에는 입재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으나 현대사회의 바쁜 생활을 고려해 역시 올해부터 하루 전 입재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제사 전날 오전 제관들이 의관을 정제하고 사당, 즉 퇴계와 제자 월천의 위패를 모신 상덕사(尙德祀)에 나아가 입재를 고하고 향사를 올리러 왔음을 알리는 알묘례(謁廟禮)로 향사를 시작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역할을 나누어 정하는 분정(分定), 제사상에 올릴 돼지를 검사하는 생간례(牲看禮), 제기를 씻어 말리는 척기례(滌器禮)도 엄격히 치른다. 이어 저녁에는 쌀을 씻되 손을 넣지 않고 아홉 번을 일어 씻는 석미례(淅米禮), 임무와 역할을 예행연습하는 습례(習禮)까지 해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변화의 덕분에 지난 2월 춘향에는 일반인이 10여명 참관했다. 비가 왔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서원 측은 보고 있다.

본고장이지만 오래전부터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게 중국 유교다. 우리 유교는 고유의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시대 변화에 맞춘다면 동양권에서 가장 경쟁력 갖춘 문화가 될 수 있다.

이상훈 북부지역본부장 azzza@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