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국, 그리고 나] 아프리칸 헤어스타일

머리카락이 새로 자랄 때쯤 나의 꿈도 새싹처럼 피어날까

지난여름 내 친구 차차가 머리를 잘랐다. 아니, 자른 정도가 아니라 빡빡 밀었다.

"진짜 시원하겠다!" 부러워하는 내게 차차는 손바닥으로 머리를 쓱쓱 문지르며 웃을 뿐이었다. 벌써 다섯번째다. 2,3년에 한번꼴로 그녀는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대체 왜?"이다.

"아프리카 최신 유행 헤어스타일이잖아!" 나의 말에 차차는 거길 가야겠다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나도 3년 전 아프리카 최신 유행 헤어스타일 '빡빡머리'를 한 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가짜 머리카락을 붙여 가닥가닥 땋은 레게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열대의 무더위와 비포장도로의 먼지, 그리고 무엇보다 씻을 물이 부족하다는 것 때문에 아예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인지 아프리카에는 빡빡머리 여자들이 많다. 그러니까 그곳에서는 빡빡머리가 그리 유별난 것이 아니다.

차차와 나는 머리카락에 관해선 동병상련의 비애가 있다. 첫째, 머리숱이 적어서 어떤 헤어스타일에 도전한들 예뻐지지 않는다는 것. 둘째, 아무리 옷은 단정하게 입어도 헤어스타일만은 늘 부스스한 상태라는 것이다. 뒤의 말은 아무래도 우리 둘의 게으른 성격 탓일 터. 아무튼 그런 둘이 만나면 늘 머리 이야기이다. 차차는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고 나면 그 다음엔 청정수역의 깨끗한 미역처럼, 유기농 텃밭의 갓 움튼 새싹처럼 오염되지 않은 새 머리카락이 돋아날 거라고 믿는 게 틀림없다.

한편, 갓 자란 머리카락이 아무리 신선해도 냉장고에 보관할 수는 없다는 게 우리의 숙명이다. 삶의 온갖 불쾌한 온도에 가열되고 오염된 공기의 찌꺼기가 들러붙어 특별히 약한 체질로 태어난 그녀와 나의 머리카락은 유년기도 채 지나지 않아 푸석하니 부스스한 노년으로 접어들고야 만다. 안타까운 건 우리 몸의 체질만큼이나 우리 '마음의 체질(?)'도 현실의 시공간을 견디기엔 특별히 약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제일 힘든 건 남들처럼 사는 것이다. 똑같이 눈 뜨고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먹고 자는 게 (똑같이 연애하고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게) 왜 안 될까. "여태 살아온 방법이 잘못 됐나 봐. 여기선 이렇게밖에 못 산다면 다른 곳에 가면 좀 더 행복해질까." 나는 그녀가 곧 여행을 떠나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몸의 오염된 잔털조차 말끔히 밀어버리고 새 머리카락 같은 신선한 꿈과 신선한 욕망을 새싹처럼 잉태해 가지를 뻗치고 꽃을 피우며 멋진 나무로 자라고 싶다.

빡빡머리 차차는 일주일 후 스웨덴으로 떠났다. 38년간의 한국 생활을 '대충' 정리하고 새로 돋아날 청정미역 같은 머리카락과 함께 새로운 꿈이 자랄 수 있는 완전히 다른 땅으로 갔다.

아프리카인들은 특별히 튼튼한 머리카락을 갖고 태어난 것 같다. 뿌리부터 강한 곱슬머리로 올라오는 머리카락들은 서로 쉽게 엉기고 뭉쳐서 선인장처럼 깊은 생명력을 품고 자란다. 그들은 머리바닥에 수많은 오솔길을 만들어 요리 땋고 조리 땋아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한 헤어스타일을 연출한다. 아프리카에 가보시라. 그들이 만들어내는 헤어스타일의 상상력에(거침없는 빡빡머리도 포함해서) 입이 쩍 벌어진다.

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이 가장 욕망하는 헤어스타일은 바로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 스타일이다. 곧게 뻗은 긴 생머리를 갖기 위해 그들이 들이는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용실 따위가 없는 시골동네에서는 어릴 때부터 모녀끼리 자매끼리 서로의 머리를 빗어주고 땋아주는 게 그들의 일상사이다. 생활 속에서 밥 먹는 것처럼 늘 헤어스타일을 연구하고 발명하는 셈이다. 그들은 긴 생머리를 얻기 위해 수시로 머리카락을 반듯하게 펴주는 헤어크림(슈퍼에 가면 판다)을 머리뿌리부터 가닥가닥 정성 들여 바른다. 아니, 바르고 또 바른다. 그렇게 해서 그토록 지독하게 싱싱한 곱슬머리가 정말로 찰랑찰랑한 생머리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온갖 다양한 스타일이 쉽게 연출되는 그들의 곱슬머리가 오히려 부러운데 말이다. 전혀 딴소리 같겠지만, 그들은 머리카락만큼이나 거칠고 싱싱한 땅에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행복한 꿈을 키우며 산다.

빡빡머리로 8개월간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돌아온 지, 그러니까 다시 머리를 기른 지도 3년이 지났다. 내 머리카락은 이제 겨우 겨드랑이쯤에 닿는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지만 이렇게 머리가 안 길 수가 있단 말인가. 지난 3년간 다시 시작된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 연애의 스트레스, 남들처럼 밥 먹고 자는 스트레스, 그리고 꿈이 지연되고 욕망이 억압되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외치고 싶다. 너무나 복잡하고 밀도 높은 생활의 공기를 뚫고나오기엔 내 머리카락이 체질적으로 너무 약하다. 스웨덴으로 날아간 차차의 머리카락은 얼마나 길었을까.

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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