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구시민회관

일제강점기에 대구의 중심지였던 태평로 2가에 건립된 대구공회당은 당시 대구에서 가장 우뚝한 건물 중 하나였다. 주로 회합장소로 쓰였지만 대구 문화예술계에도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1917년 대구출신 작곡가 박태원의 지휘로 대구 최초의 합창회가 열렸고, 몇 대 없던 그랜드 피아노를 갖춰 연주회도 곧잘 열리곤 했다. 또 한국전쟁 때는 대구문화극장(현 한일극장)자리로 옮긴 국립중앙극장과 함께 대구 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 공회당은 1962년부터 1972년까지 현 KBS대구방송총국의 전신인 대구방송국이 대구시로부터 임대해 사용했다. 방송국 안에는 570여 석 규모의 공개홀이 있었는데, 대구방송국의 호출부호인 HLKG의 뒷자리를 따 KG홀로 불렀다. KG홀은 선망의 장소여서 아이들 사이에선 한 번 갔다온 것이 무슨 벼슬이나 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KBS대구방송국이 신천동 사옥으로 옮기면서 공회당은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2년 10개월만인 1975년 10월 대구시민회관으로 다시 태어나 현재의 모습으로 개관했다. 대구시민회관은 1990년 대구문예회관이 건립될 때까지 15년 동안 대구공연예술의 중심지였고, 문예회관과 함께 대구 공연예술의 쌍두마차 역할을 했다. 이후 각 대학에 대형 공연장이 들어서고 대구오페라하우스가 건립되면서 시민회관은 위상이 크게 낮아졌다. 이와 함께 대구역 주변이라는 지리적 위치에 따른 진동, 소음과 시설이 낡아 대구 공연예술 중심지라는 말은 이제 추억거리가 된 지 오래다.

그냥 두자니 공연장으로서의 활용도는 떨어지고, 고치자니 비용이 많이 들어 골칫덩이로 여겨졌던 시민회관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대구시는 500억 원을 들여 2011년까지 완전히 뜯어고친다고 한다. 대공연장 위주의 개축, 또는 공연지원관까지의 증축이 논의되고 있다. 다만, 클래식 공연 위주의 콘서트홀로 할 것인가, 다목적 강당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중이다.

대구 예총이 7일 '대구시민회관 리노베이션 방안'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모처럼 대구문화예술계가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대구시도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잘 모아, 대구의 문화예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