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구(48·사진)씨는 이달 1일 새벽 3시 20분쯤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눈을 떴다. 급한 마음에 속옷 차림으로 거실로 나가 보니 누군가 문을 따고 있었다. 올해에만 5번째 찾아온 밤손님이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은 허씨는 놋쇠주전자를 손에 쥐었다. 마침내 도둑이 문을 열었고 허씨는 힘껏 휘둘렀다. 빗맞은 일격. 정장 차림의 도둑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허씨는 사력을 다해 추격전을 펼쳤다.
맨발에 속옷 차림으로 200여m를 추격한 허씨는 결국 주차 차량 뒤편에 숨어 있던 범인을 찾았다. 그리고 거친 숨소리를 내뿜는 범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20대의 범인은 거세게 저항했다. 대구격투기협회 이사를 맡고 있는 허씨도 만만치 않았다. 허씨를 뿌리치고 도망치려는 범인의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 허리끈을 잡아당겼다. 바닥에 고꾸라진 범인. 허씨는 "도둑이야"를 연방 외쳤다. 새벽녘 날카로운 외침에 놀란 주민 20여명이 허씨를 도왔고, 경찰에 신고했다. 명절을 앞두고 벌어진 한밤의 추격전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날의 긴박했던 순간을 설명하던 허씨는 사라진 앞니를 보여주었다. 몸싸움 도중 도둑에게 맞아 부러져 나갔다. 올해 들어 5번이나 도둑이 찾아든 까닭에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허씨는 "무엇보다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지난번에도 쫓아갔지만 놓쳐서 남은 아쉬움도 정리했다.
치안 부재도 꼬집었다. 도난 신고를 해도 사건은 해결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딸(19)에게 미안하단다. 새벽 3시를 전후해 찾아오는 도둑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허씨의 딸은 결국 노이로제에 걸렸다. 허씨는 "자기 집은 자기가 지켜야 하는 것이냐"며 "불과 1개월 전에도 도둑 침입 신고를 했지만 다시 도둑과 맞닥뜨려야 했다"고 씁쓸해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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