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는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멋진 남자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는 공적 자체가 전부는 아니다. 용기와 정의감, 따뜻한 인간미, 종교적 헌신성까지 두루 갖춘, 영웅호걸(英雄豪傑)의 풍모를 가진 분이었다. 그리 길지도 않은 30년 6개월의 생애 동안 불꽃 같은 열정과 치열한 목표의식을 갖고 자신의 몸을 내던질 수 있는 분은 우리 역사에서도 그리 많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안 의사가 어느 정도의 치기와 낭만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청소년 시절 공부는 하지 않은 채 술 마시고 노래하고 매일 총 메고 다니며 사냥에 열중했고, 천주교를 비방하는 금광 감독에게 따지러 갔다가 인부들과 단도를 뽑아들고 대치한 적도 있다. 천주교인임에도 프랑스 신부가 한국인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 반드시 따지고 사과를 받아야만 직성이 풀렸다.
1908년 의병 전쟁 중 일본 군인과 상인들을 포로로 잡았을 때는 군인이라기보다는 원론적인 철학자 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안 의사는 포로 처형을 주장하는 동료들에게 "우리들마저 일본인들과 같은 야만적인 행동을 해야만 하겠는가? 그대들은 일본의 4천만 인구를 모두 죽인 다음에 국권을 회복하려는가"라고 말하며 포로를 석방했다. 그 처사에 분개한 일부 동료들이 부대를 떠났고, 포로들이 일본군에게 의병의 위치를 알려주는 바람에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런 인간적인 빈틈이 안 의사의 매력을 더해준다. 저 높이 있는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는 '카리스마 있는 형님' 같은 느낌을 주는 부분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그리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다. 근대 일본의 초석을 놓았다고는 하지만 강한 출세욕에 뛰어난 협상력을 가진, 노회한 정치가였다. 안 의사와 이토, 두 사람을 굳이 비교하자면 '순수남'과 '속물남'의 차이라고 할까?
이토는 일본에서 굉장한 예우를 받고 있었다. 도쿄에 있는 널찍한 호화분묘는 물론이고 고향의 기념관, 여러 도시의 박물관, 대학 도서관에도 이토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불행한 최후를 맞은 인물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속성도 있지만 국가·사회에 공헌한 인물을 제대로 조명하고 기리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이틀 후면 안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지만 우리 실정은 어떠한가. 아직까지 중국 뤼순 어디엔가 묻혀있을 안 의사 유골을 찾지도 못했다. 낡고 오래된 남산 기념관을 대신할 새 기념관은 내년 서거 100주년 때에도 완공되지 않는다. 초라한 현실 앞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후손들의 죄가 너무나 크다. 안 의사께 용서를 빌고픈 마음뿐이다.
박병선기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