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고 싶은 일보다 아버지의 뜻이 고귀하니까요."
그의 부모는 결혼 80주년을 한 달 앞두고 돌아가셨다. 부친이 14세에 결혼해 79년 11개월 동안 모친과 해로(偕老)한 것. 결혼 때 말로만 듣던 백년해로(百年偕老)를 80% 채웠다. 그 주인공이 5년 전 10월 27일에 돌아가신 성천(星泉) 류달영 전 성천문화재단 이사장이다.
고(故) 류 전 이사장은 농학자로 인문학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나라의 정신적 품격을 높이고자 사재를 털어 18년 전 성천문화재단을 설립했다. 나라에 공헌한 바도 크다. 애국지사로 일제강점기 때 옥고를 치른 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재건국민운동본부장을 맡아 '새마을운동'에 기치를 올리기도 했다. 고인의 유지는 하나뿐인 아들 류인걸(73) 현 이사장이 이어가고 있다.
류 이사장은 기일(忌日)인 27일 서울에서 제사를 지내고 28일엔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부친의 5주기 추도식을 성천문화재단 제자들 47명과 함께 치렀다. 기자는 점심시간에 북대전IC 인근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류 이사장은 자유로운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지루하지 않은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오지(부탄, 예멘, 모로코,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사진 찍는 것이 취미라고 한다. 하지만 부친이 무엇을 이 땅에 남기고자 했는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대적 흐름에 맞는 커리큘럼과 학습법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또 성천문화재단의 강의는 고인의 뜻에 따라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진리와 학문적 가치에 있는 것이라고 널리 알린다.
그는 '문사철'이라고 했다. 인문학의 바탕이 되는 '(문)학·역(사)·(철)학'을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접목시키며 그들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자세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가가 숙제다.
이 때문에 지금은 국내 인문학 석학들의 강좌들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2년 후부터는 온라인 강좌를 열어갈 계획이다.
연간 운영비 2억2천여만원. 지난해 약 3천만원의 적자를 봤지만 올해, 내년엔 사비를 더 털어 성천문화재단을 인문학 강좌 본당의 위치에 올려놓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한푼이라도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부인 남우정(67)씨는 든든한 동반자. 40년 이상 함께 지내다 보니 세상 다른 어떤 친구보다 더 서로를 잘 이해해주는 '친구 중 친구'라고 류 이사장은 아내를 그렇게 표현했다. 사실 아내인 남 이사는 당시 서울대 문리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재원 중에 재원. 하지만 한 집안의 며느리로, 한 남편의 아내로 또 하나뿐인 아들의 엄마로서 역할을 잘 해줬다. 류 이사장의 장모이자 그의 어머니는 한글 궁체를 개발해 정착시킨 유명 여류인사이기도 하다.
성천문화재단 직원들은 재단설립 때부터 20년을 함께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의 존재들이다. 김홍근 재단 부원장은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려다 진로를 '성천'으로 바꿨다. "학교보다 훨씬 재밌고 보람된 곳"이라는 게 그가 이곳에서 실무를 보며 청춘을 바친 이유. 사업부장은 차량운전도 하면서 20년 이상 집사노릇을 잘 수행하고 있으며, 경리과장도 알뜰한 살림꾼으로 재단의 재정에 구멍이 나지 않도록 각별히 관리하고 있다. 류 이사장 내외를 비롯한 이들 5명은 성천재단의 드림팀인 것.
성천문화재단은 대구에서도 13년 동안이나 운영됐다. 동대구세무서 근처 건물에 세들어 1992년부터 2005년까지 인문학 강좌를 펼쳤다. 인문학이라면 국내 석학이라 할 만한 인사들이 강사로 나섰으며 한때 잘 운영되었으나 인문학 경시의 사회풍조와 맞물려 수강생이 점차 줄어들면서 2006년 문을 닫고 말았다. 13년 동안에는 대구의 김계남 재단이사(두산약국 운영)가 실질적인 운영비를 부담하며 성천문화재단에 큰 도움을 줬었다.
한편 고인이 된 류달영 전 이사장은 1·4후퇴 당시 대구로 내려와 1년 가까이 경북대 농대 한 교수의 집에서 피란생활을 할 때 '덴마크 부흥사'라는 책을 집필했는데, 이 책은 향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의 모태로 삼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됐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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