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이지 않는 최이선(70·상주시 병성동)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한손은 일곱살 손녀 정하의 손을 꼭 잡은 채 마을 어귀로 마중을 나왔다.
어린 손녀가 할머니의 눈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할머니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눈이 보이지 않다 보니 여기저기 잘 넘어지고 부딪혀 다리며 허리며 성한 곳이 없다.
최 할머니의 집은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낡은 시골집이었다. 작은 방문은 허리를 바짝 굽혀야 드나들 수 있었고 컴컴한 부엌은 아예 사용을 하지 않은지 한참 된 듯 여기저기 거미줄이 엉겨 있었다.
할머니는 부엌 입구에 휴대용 버너를 놓고 음식을 만들었다. 할머니는 "깊숙이 내려가야 하는 시골 부엌이 다니기에 너무 불편한데다 가스레인지도 낡고 삭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부엌 입구에는 수저통과 그릇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한쪽에는 조립식 패널로 만들어진 화장실이 있었지만 거의 사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공무원들이 나와 지어주고 갔지만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 사용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당연히 식사는 '맛있는 밥상'이 아니라 겨우 배고픔을 해결하는 수준이다. 밥에다 이웃들이 가져다준 김치 한조각. 찌개 한번 끓여먹기도 힘들다. 먹지 못하는 것인 줄도 모른 채 이것저것 잡히는 대로 입에 넣기 일쑤이고, 불에 손을 데는 일이 잦아 손이 성할 날이 없다.
할머니는 "그나마 정하랑 같이 있을 때는 정하가 알려주기라도 하지만 혼자 식사를 하다 벌레를 씹어먹은 적도 부지기수"라며 "서러움에 북받쳐 울기도 많이 했다"고 눈물을 훔쳤다.
정하는 태어나자마자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할머니는 "딸이 어린 손녀를 낳자마자 시골집에 데려다 놓고 소식을 끊었다"며 "얼마 전에 겨우 연락이 닿았는데 담석증에 걸려 제 한몸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하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할머니에게도, 정하에게도 힘든 일이다. 취재진이 할머니댁을 방문한 것은 낮 12시 무렵. 하지만 정하와 할머니는 그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였다. 정하는 연방 "배가 고프다"고 보챘다. 할머니는 "허리와 다리가 아파 꼼짝하기 힘드니 밥을 챙겨 먹이는 것도 힘에 부친다"며 "옆집에서 호박을 하나 줘 죽을 끓여보려 긁어봤는데 눈이 보이질 않으니 제대로 되질 않아 포기하고 그냥 굶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씻는 일도 힘들다. 할머니는 "뜨거운 물이 나오질 않으니 아궁이에 불을 때 물을 끓여 씻겨야 하지만, 눈이 어두운 내가 물을 데워줄 수도 없고, 어린 정하가 혼자 물을 데워 씻을 수도 없다"고 했다
연탄불을 자주 꺼뜨려 냉방에 자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연탄 불구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할머니는 "가끔 이웃들한테 부탁해 연탄불을 봐 달라고 하기도 하지만 하루에도 몇번씩 부탁할 수 있겠느냐"며 한숨만 내쉬었다.
할머니는 40여년 전 갑작스레 시력을 잃었다. 남편이 바람이 났는데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갑자기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한 것. 할머니는 "병원에 갔더니 스트레스로 시신경이 말라버렸다고 하더라"고 했다.
40년이면 암흑의 세계에 적응이 될 법도 하건만 할머니는 여전히 넘어지고 부딪혀 온몸이 성칠 않다. 시골집은 높은 문지방과 푹 꺼진 주방, 여기저기 차이는 돌부리 등 시각장애인이 생활하기에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할머니는 "몇달 전 에스컬레이터를 타다 넘어져 허리를 다쳤는데 이게 아주 고질병이 됐다"며 "허리 물렁뼈가 튀어나와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비용도 마련할 길 없어 침이나 물리치료로 견디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할머니의 소원은 정하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정하의 곁을 지키는 것이다. 할머니는 "뭐 하나 제대로 해 주는 것 없는 할미지만 저 어린 것 혼자 사는 것보다는 피붙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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