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붓질 하나하나도 리듬" 대구시향의 특별한 '단원' 권기철씨

10여년 연주회 포스터 제작 클래식 매니아

12년간 대구시립교향악단 연주회 포스터를 그려온 서양화가 권기철은 그림을 통해 대구 클래식계를 도운 숨은 주인공이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12년간 대구시립교향악단 연주회 포스터를 그려온 서양화가 권기철은 그림을 통해 대구 클래식계를 도운 숨은 주인공이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클래식 연주회장을 자주 찾는 젊은 화가가 있었다.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등을 형상화한 그의 그림은 주변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즈음 "대구시립교향악단(이하 대구시향) 연주회 포스터를 그려보면 어떻겠소?"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화가는 그러마고 했다. 이후 12년. 화가는 200여장에 달하는 연주회 포스터를 그리고, 디자인하며 대구시향을 돕는 또 한 명의 '단원'이 됐다. 서양화가 권기철(46) 얘기다.

"대학(경북대 미술과) 3학년 때 선배 작업실에서 헨델의 하프 협주곡을 들었는데, 순간 꽂혔어요. 그 후로 그림 작업 때는 꼭 클래식 음악을 틀 정도로 마니아가 됐어요."

권기철이 대구시향의 첫 연주회 포스터를 그린 것은 1998년 1월 신년음악회. 그전까지만 해도 꽃그림 도안 정도에 그쳤던 대구시향 포스터는 그의 그림이 더해지면서 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 됐다. 12년간 그린 200여장의 포스터는 모두 개성이 넘친다. 엄숙한 베토벤은 차분한 색으로, 경쾌한 모차르트는 밝은 색감으로 그려진다. 실내악 연주자들이 흥겹게 연주를 하는 구상화 풍이 있는가 하면, 피아노의 검정색을 형상화한 추상화 풍도 있다. 최근 경향은 한 눈에 알기 힘든 추상화가 많다. "호작질 같다"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그는 "재미있는 표현"이라며 파안대소했다. 왜 추상화일까. "의도적이죠. 그 음악을 뼛속 깊이 이해한 사람이라면 한 획에서도 느낌을 찾아요." 그는 시향을 인연으로 대구여성오케스트라, 타악예술협회, 팝심포니오케스트라 등 여러 연주 단체 포스터를 그리기도 했다.

그의 작업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되도록 협주곡 위주로 메인 도안을 짠다. 색감은 계절을 감안하고, 신년·송년·특별기획 등 공연 성격도 배려한다. 곡의 비중도 빼놓을 수 없다. 포스터를 그리기 전엔 해당 연주회의 곡을 꼭 찾아 몇 번이고 듣는다. 원화는 작은 30호부터 100호까지 대중없다. 느낌대로 그린다. 그의 작업실 한쪽 벽엔 수백장의 LP 레코드가 빼곡하다. 그의 작업실에 걸린 1년치 대구시향 연주 일정과 곡목이 노고를 대변해준다. 그가 캘리그라피(손그림)로 쓴 '대구문화예술회관'은 각종 포스터에 빠지지 않는 정식 로고가 됐다.

그는 못말리는 클래식 애호가다. 3년 전 시내 한 복판에서 달성군 가창의 빈 축사로 아틀리에를 옮긴 것은 순전히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싶어서"다. 10년 넘게 음악 포스터를 그리다보니, 음악과 미술이 어느 접점에서 통하더라고 했다. "붓질도 리듬이고 운율입니다. 하얀 공간에 붓을 탁 치는 순간은 마치 지휘자가 첫 비트를 치는 순간처럼 긴장이 고조돼요."

그는 대구시향과의 작업이 자신의 폭을 넓혀줬노라고 감사해했다. "음악은 제 그림에 에너지를 증폭시켜 주고, 평범한 것을 특별한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줬어요." 권기철은 대구시향 포스터 작업 등의 공로로 대구시장 표창 수상자로 선정됐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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