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다음달 태어나는데 이제 좀 가르쳐 주세요.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은데…."
"그건 좀 곤란한데요."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의사와 임산부 사이에 흔히 볼 수 있는 한 장면이다. 병원 방침에 따라 불법이었던 태아성별을 알려주지 않는 의사는 임산부들 사이에선 '깐깐하고 별난 의사'로 취급받았다.
지난 2008년 7월 31일 헌법재판소의 '태아성감별 고지 금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지 1년 6개월여 만인 올 1월 1일부터 개정 의료법에 따라 임신 32주 이상의 임산부에게는 태아의 성별 고지를 허용하는 법이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임신주수에 상관없이 태아성별을 알려주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한해 2천명이 넘는 아기가 태어나는 포항의 한 여성병원 홍보팀 직원 C씨는 새해가 시작되기 바쁘게 개정된 의료법에 의한 '태아성감별 안내문'을 진료실에 붙였다. 임산부 모임이나 인터넷 카페 등에서 '올해부터 임신 28주 이상이면 태아 성별을 알 수 있다'며 떠도는 말 때문이다.
C씨는 "업무상 종종 인터넷 임산부 카페를 찾다 보면 임신중 입덧이 가볍게 넘어가고 고기를 좋아하면 아들, 밥보다 과일이나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면 딸 식의 근거 없는 아들 딸 구별법까지 올라와 있다"며 "제한적이나마 태아성별 고지가 허용돼 다행이다"고 말했다.
임신 28주에서 32주로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후퇴하긴 했지만 임산부들도 개정된 이번 의료법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많은 임산부들은 얼마 전까지 진료의사의 눈치를 봐가며 슬쩍슬쩍 물어보기 일쑤였고 의사들도 빨간옷·파란옷 등 우회적으로 힌트를 주기도 했다.
결혼 2년차로 첫째를 임신 중인 최인희(30·포항 구룡포)씨는 "늦은 감이 있지만 8달 이후엔 떳떳하게 아기 성별을 물어볼 수 있다니 다행이다'며 반겼다.
최철식 시민기자 ccs1520@naver.com
도움:포항·이상원기자 seagul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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