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모습을 한 호랑이가 오누이를 쫓아왔어요. 오누이는 호랑이를 피해 나무로 올라갔어요. 뒤따라온 호랑이가 어르렁거리면서도 발톱을 숨기고 물었어요. '너희들은 어떻게 나무에 올라갔니?'"
8일 오후 2시 대구동부도서관 영유아자료실. 10여명의 어린이들이 강필순 할머니가 들려주는 '햇님달님이 된 오누이'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동안 동화책을 혼자 읽거나 애니메이션의 기계음으로만 듣던 어린이들은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 모습이었다.
동부도서관이 겨울방학을 맞아 운영하는 '할머니의 꿀맛 같은 그림책 이야기 속으로' 프로그램이 영유아와 초등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인기다. 이달 초부터 다음달 말까지 매주 화~금요일 오후 2시에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는 언제나 20명 안팎의 어린이가 찾아온다. 날마다 다른 할머니가 번갈아가면서 다른 그림책을 읽어주기 때문에 매일 와서 듣는 어린이도 적잖다. 두 달에 걸쳐 9명의 할머니가 32개의 그림책을 읽어줄 예정이어서 이 프로그램 참가만으로도 어린이들이 제 나이에 알아야 할 동화는 어지간히 접할 수 있다. 아이를 안고 오는 엄마들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 팬이 됐다.
김성인 할머니는 "도서관에서 쌓은 솜씨라 다소 부족하지만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다"며 "가족들이 정년 없는 직장을 얻었다며 후원해줘 기쁨이 더 크다"고 말했다.
평균 연령 65세 이상인 동화책 읽어주는 할머니들은 단순한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동부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할머니 동화연구반' 강좌를 통해 실력을 쌓은 전문가급이다. 2007년 도서관 측이 북스타트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부터 영유아를 대상으로 그림책 읽어주기, 동화구연, 동극공연, 동요 부르기 등의 프로그램을 도맡아 하다 보니 웬만한 이야기꾼을 넘는 솜씨를 갖췄다.
지난해에는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다문화가정 결혼이면여성과 자녀들을 위해 동화구연, 한국 예절 배우기, 우리 음식 만들고 맛보기 등의 프로그램도 참가했다. 자상한 친정 어머니나 할머니처럼 그들에게 그림책을 통해 한글을 익히게 하고 문화체험을 통해 한국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줘 호평을 받았다.
김증출 할머니는 "도서관은 멀리 있는 건축물이 아니라 인생의 좋은 친구라는 사실을 더 많은 어린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며 "언제나 구수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 할머니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조명희 동부도서관 열람봉사과장은 "할머니들이 참 인생을 새로 살아간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며 "도서관 강좌를 통해 자체 배출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실력을 쌓았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 도서관의 보석 같은 존재가 됐다"고 했다.
별도의 참가 신청 없이 화~금요일 오후 2시에 도서관 어린이실을 방문하는 어린이와 학부모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운영 날짜, 책 읽어주는 할머니, 책 제목 등은 도서관 홈페이지(www.dongbu-lib.daegu.kr)를 참고하거나 어린이실(053-940-4144)로 문의하면 된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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