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닥터 토크박스] 대구에 사는 행복

얼마전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로 접합 수술을 받은 40대 환자가 있었다. 손가락 세 개가 절단된 중상이어서 5시간이 넘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인 수술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나오면서 환자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환기시켰다.

"현재는 손가락을 잇고 피가 가도록 했지만 앞으로 며칠 동안은 각별히 조심해야 완전히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의 반응은 의외였다. 별로 기뻐하지도 달가워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고맙다는 인사말까지는 아니어도 안도의 웃음 정도는 기대했는데 내심 많이 서운했다. 그래도 손가락은 잘 살아주었고 뼈도 잘 붙어 조금씩 물리치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루는 그 환자가 진료실을 찾아왔다. 필자는 궁금한 마음이 들어 조심스럽게 수술하는 날 서운함을 이야기했다. 환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 속을 어찌 알았습니까? 사실 그때는 그랬습니다. 주위에서 나처럼 다친 사람을 많이 봤는데 모두 절단했거든요. 내 손가락도 그렇게 될 줄 알고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손가락이 붙어 있고 움직이니 이렇게 좋네요. 대구에 이런 병원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대구에 사는 것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치료를 어디 가서 받겠습니까?"

환자의 말에 공감이 갔다. 타지에서 온 필자가 생각해도 대구에는 대학병원들이 많고, 각종 질환들에 대해 전문성을 갖춘 병원들이 많이 있다. 의료 부문 외에도 잘 갖추어진 도로망과 편리한 생활 환경 등 서울 못지않은 장점이 많다.

특히 손 환자들 대부분은 노동자들이어서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 서울까지 가는 원정치료를 받을 형편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구에는 수부외과 질환에 대해서는 환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다. 필자의 입장에서도 전문병원에서 특화된 분야의 환자를 진료하며 의료의 질을 높여갈 수 있어서 수부외과 전문의로서 대구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

고속열차가 개통된 수년전부터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됨에 따라 대구에서 서울 오가기가 편해지고 그만큼 사람들의 이동이 많이 늘었다. 대구지역 환자들도 서울의 원정 진료가 늘면서 지역 병원들은 환자수 감소를 걱정해야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병원들은 서비스 개선, 쾌적한 병원환경 조성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수년이 흐른 지금,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지역 병원들이 얻은 공통된 결론은 '실력을 갖추고 분야를 특화해서 서울 소재 병원과 경쟁해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2009년 대구의료특구 지정으로 인프라가 확충되면 대구는 의료부문에서 경쟁할 기본적인 자격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이 영 근 053)550-5000 trueyk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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