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의 참상이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합니다. 몇년 전 물과 소금, 마가린을 섞어 만든 진흙 쿠키를 먹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그들이 아이티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건강식이 아니라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흙을 먹는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인구 890만명 중 80%가 연간 100달러 미만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최빈국이며, 문맹률이 45%, 기대 수명이 52세에 불과한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입니다. 이번 지진에 그토록 많은 피해가 난 것도 가난 때문입니다. 건물의 대부분이 내진 설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연성 콘크리트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삶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이티는 프랑스 식민지로 있다가 1804년 혁명으로 독립을 쟁취한 나라입니다. 미국에 이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두 번째로 독립혁명에 성공했습니다. 그 주체도 흑인 노예들이었습니다. 그 동안 아이티는 미국의 코밑에 있으면서도 미국에 동화되지 않고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문제였는지 모릅니다.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와 크레올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아서 독재와 쿠데타가 반복되었습니다. 정치가 불안하면 나라 살림이 궁핍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인 미국 근처에 있으면서도 떡고물조차 얻지 못한 것입니다.
제임스 로웬의 저서 『미국의 거짓말』(갑인공방, 2005)을 보면 오늘날 아이티의 어려움은 탄생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흑인 노예가 나라의 주인이 되는 현실, 과연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남북 전쟁, 링컨의 노예 해방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인권 정신, 민주주의가 아이티를 포용할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쿠바처럼 아이티도 미국의 눈에는 가시와 같은 존재였는지 모릅니다. 책의 내용 중에 'KKK단, 부끄러운 역사를 밝혀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KKK단은 쿠 클럭스 클랜 (Ku Klux Klan)의 약자로 백인우월주의, 반(反)유대주의, 인종차별, 반가톨릭, 기독교 근본주의, 동성애 반대 등을 표방하는 미국의 극우 비밀결사 단체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단체는 1886년 미국에서 설립되었는데, 주목적은 흑인들의 정치적 진출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가끔씩 미국 고전 영화를 보면 흰색 천으로 온몸을 감싸고 흑인들에게 폭력과 협박을 행사하는 무리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활동과 지도자를 찬양하는 기념비와 기념물, 그리고 그 밖의 사적지들이 미국 내에 최소 50개나 남아 있다고 합니다. 워싱턴 DC 도심의 앨버트 파이크 동상과 오리건주 라그란데의 월터피어스 도서관이 대표적입니다. 반면에 KKK단을 부정하는 내용의 기념물이나 사적지는 아예 없고, 4개 정도의 기념비만 있다고 합니다.
노예 해방의 아버지로 알려진 링컨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링컨은 1809년 한 농장의 작은 통나무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조금 더 지나 그의 가족은 16km 떨어진 다른 농장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링컨이 암살당한 직후 그 농장을 방문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오두막집은 이미 폐허로 변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후 근 100년이 지난 1895년에 뉴욕의 사업가 알프레드 데닛이라는 자가 농장을 매입하여 링컨 농장에 통나무 오두막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을 '링컨의 생가'로 알리려고 애씁니다. 잘 되지 않자, 오두막집을 분해하여 각종 박람회로 옮겨 다닙니다. 시간이 지나 '링컨의 오두막집'이 인기를 끌자 링컨농장협회를 설립하고, 변호사를 고용해서 세 명의 주민에게서 그 오두막집이 진짜임을 증명하는 확인서를 받아냅니다. 그렇게 해서 미국 명예의 전당에 있는 '링컨의 오두막집'이 탄생한 것입니다. 1909년 링컨 탄생 100주년에 맞춰 원래 크기의 오두막집을 짓는 기공식에 참석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합니다. "링컨이 태어난 켄터키주 호젠빌의 거친 통나무집은 그와 서민들과의 연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결국 미국인들은 링컨을 노예 해방의 아버지가 아니라 '가난뱅이에서 부자로'라는 미국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상징물로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노동일<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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