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annual salary) 3천여만원.' 적지 않은 액수이지만 본국으로 돌아가면 1.5~3배는 수입을 올릴 수 있는데도 굳이 대한민국 그것도 대표 보수도시인 대구에 머무르며 운동을 하고 있는 남녀 외국인선수가 있다. 대구시청 핸드볼팀 소속의 사쿠가와 히토미(33) 선수와 하태호 유소년 축구클럽 소속의 브라이언 냅(Brian Knapp·26) 축구코치.
일본인 히토미 선수는 이달 12일 '2010 SK핸드볼 큰잔치' 대회 도중 모친상을 당했음에도 불구, 눈물을 머금고 다음날 출전해 결정적인 고비 때마다 골(총 5골)을 작렬시키며 그날 최고의 수훈갑 선수가 돼 주변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미국인 브라이언 코치는 학원강사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취업비자를 얻어 정식 축구코치가 됐다. 돈보다 대구에서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두 외국인을 만났다.
◆국내 유일의 용병 핸드볼 선수, 히토미
히토미 선수는 처음 봐선 일본인이 아닌 것 같다. 남미 쪽이나 서양인의 이목구비다. 하지만 일본 오키나와에서 태어난 순수 일본인. 1남4녀 중 3녀가 핸드볼을 하는 핸드볼 가족이다. 그 중 핸드볼을 가장 잘하고 일본 국가대표 생활까지 한 선수가 히토미다.
그는 지난해 5월 1일 대구행을 선택했다. 일본 실업팀에서 더 많은 연봉을 받으며 뛸 수도 있었지만, 대구시청 핸드볼팀에서 라이트 윙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련 없이 대구로 향하는 보따리를 쌌다. 대구시청에는 일본 오므론 전기 팀에서 2년 동안 함께 뛴 허순영(2004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의 주전멤버, 영화 우생순의 주역) 선수가 있었기에 결정은 더 쉬웠다. 히토미는 국내 첫 외국인 핸드볼 선수다.
히토미 선수는 "일본에서보다 돈을 많이 받지 못하지만 대구에서 재래시장을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가 좋다"며 "대구시청에서 운동하는 것이 즐겁고 한국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1년 계약으로 대구시청에 입단했지만 이곳에서 좀 더 뛰고 싶다"고 밝혔다.
13일 열린 서울시청과의 경기는 눈물겨웠다. 3년 전 심장수술을 받고 고생하던 어머니(73)가 이 경기 하루 전인 12일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 임종도 못하고 바로 달려가지도 못한 채 그는 출전을 감행했다. 경기가 끝난 후에야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펑펑 울었다. 이날 경기에서 투혼을 발휘해 승리했기에 감정에 복받친 뜨거운 눈물이었다.
히토미 선수는 기자에게 "사실 경기 전이나 경기 중에는 어머니 생각은 잠시 뒤로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고백한 뒤, "경기가 끝나고 나자 어머니 생각에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대구시청 이재영 감독은 "그날 경기에서 히토미 선수가 5골을 넣었는데 모두 결정적일 때마다 터져준 소중한 골이었다"며 "이날 경기의 MVP를 뽑는다면 단연 히토미"라고 칭찬했다. 이어 이 감독은 "한국과 인연도 있을뿐더러 묘하게 우리 팀의 라이트 윙 자리를 꿰찼다"며 "연습자세와 마음가짐도 타 선수에 모범이 돼 팀워크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히토미 선수는 "할 때 하고 놀 때 화끈하게 노는 한국의 신나는 문화가 좋다"고 말했다.
◆학원강사에서 축구코치 변신, 브라이언
대구공업전문대학 축구경기장,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유니폼을 입은 외국인이 한국 유소년 축구선수들을 가르치는 데 한창이다. 리버풀의 특급스타 스티븐 제라드를 가장 좋아한다는 하태호(HTH) 유소년 축구클럽의 브라이언 냅 코치다. 그는 젊은 나이에 넘치는 열정으로 클럽 소속 유소년들과 함께 뛰며, 연습시합도 즐기면서 가르치는 스타일이다.
클럽 소속 유소년들도 브라이언 코치를 좋아한다. 축구용어나 간단한 영어회화를 배우기에도 적격이다. 그는 하태호 감독이 맡고 있는 대구 대서중학교 축구팀에서도 코치와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학원강사였지만 축구가 너무 좋아 지난해 말 결국 취업비자를 얻어 정식 클럽 축구코치가 됐다.
브라이언 코치는 "대구에서 일하며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들을 훌륭한 선수로 키우는 일은 보람 있고 신나는 일"이라며 "클럽 소속 유소년들이 나중에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프로팀에서도 이름을 날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여름부터 대구 수성구 범물동 엔도버 외국어학원에서 1년간 근무했으며, 잠시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지난해 초 또다시 대구로 와 영어강사로 일했다. 하지만 축구가 너무 좋아 주말마다 활발하게 취미활동을 하다 우연히 하태호 감독의 눈에 띄어 그의 꿈인 축구코치로 변신할 수 있었다. 코치가 된 후 그는 재밌게 축구수업을 하고 있으며, 본인 역시 한국말을 배우는 데도 에너지를 쏟고 있다.
브라이언 코치는 오성FC 풋살 선수로도 뛰고 있으며, K2 리그에서도 선수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영어를 잘하는 하태호 유소년축구클럽의 김기동 코치는 그의 동료 코치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
미국 뉴욕 시라큐스(Syracuse)에서 태어나 버팔로 대학(University of Buffalo)의 All·Mac 컨퍼런스(Conference)에서 선수생활까지 한 그는 "하태호 클럽에서 좀 더 일하다 미국 모교대학에서 축구코치를 맡는 것이 꼭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밝혔다. 그의 가족은 회사원인 아버지 빌 냅(Bill Knapp)과 간호사인 어머니 매기 리엔하트(Maggie Rienhardt) 그리고 교사인 여동생 코트니 큄비(Cortney Quimby)가 전부.
한편 그는 올해 6월에 열릴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과 미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국은 정말 어려운 팀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그리스)과 겨뤄서 이겨야 하는 데 비해 미국은 잉글랜드가 어려운 상대지만 알제리와 슬로베니아를 이기면 16강 진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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