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영애의 서양음악] 오페라를 총체예술로 승화시킨 바그너

클래식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오페라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답이 '종합예술'이다. 그러면 조금 심술궂게 교향곡이나 협주곡, 독주나 독창 리사이틀은 종합예술이 아니냐고 되묻곤 했다. 언제부터, 왜 사람들이 오페라를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2010년 봄 시즌 대구시립오페라단의 정기공연 작품이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으며,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작품이 선택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베르디의'라 트라비아타'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종합예술이 아니다.

오페라를 감상해보면 정말 오페라야말로 '예술종합선물셋트' 같은 기분이 든다. 가수들의 노래와 연기가 있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반주가 있다. 게다가 무대 장치와 조명 등의 연극적 효과까지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음악, 미술, 연극, 문학의 모든 예술이 합쳐져서 더 위대한 '총체예술'(종합예술작품·Gesamtkunstwerk)을 완성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2010년 경인년 설날을 하루 앞둔 오늘이 바로 오페라를 '총체예술'로 승화시킨 독일 낭만 오페라의 거장,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1813년 5월22일~1883년 2월13일)가 1883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날이다. 4년 여 걸쳐 완성된 자신의 마지막 오페라 '파르지팔'(Parsifal)을, 악극을 위해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건축한 바이로이트 극장 축제에서 무사히 공연한 뒤에 가족들과 이탈리아 베니스로 여행을 떠났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총체예술'은 바그너가 1849년 『미래의 예술작품』이란 자신의 글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서, 음악, 노래, 춤, 시, 시각예술, 무대기술을 종합한 개념이며 오페라의 비전을 상징했다.

극작가가 되고 싶어했던 젊은 바그너가 연극을 한층 더 향상시키기 위해 관심을 가졌던 음악으로의 길로 접어든 것은 라이프치히 대학 음악과로 진학하면서부터다. 모든 독일계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그러하듯이 바그너 역시 초기에는 베토벤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바그너는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작곡가이기도 했다. 극단적인 반음계법과 무조성, 그리고 긴 오페라 안에서 음악 형식적으로나 내용면에서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도동기'(Leitmotif-특정한 인물이나 장소, 줄거리 등을 알려주는 음악동기)를 사용함으로써 여느 오페라 작곡가들과는 구별되는 자신만의 독특함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음악과 철학을 함께 공부한 바그너는 작곡가일 뿐만 아니라 또한 지휘자였으며, 이론가였고 뛰어난 음악저술가이자 작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바그너보다 오히려 이탈리아 작곡가인 베르디나 푸치니의 작품이 훨씬 더 자주 연주되고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자신의 오페라 대본까지 직접 썼던 작곡가는 아마 바그너뿐일 것이다. 스무 살의 나이부터 오페라를 쓰기 시작했던 바그너가 평생 13편(?)의 오페라를 남긴 이유는 오페라 소재 선택에서부터 줄거리 구성 및 대본 쓰는 일까지 모두 자신의 손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바그너가 오페라를 작곡하면서 처음부터 총체예술인 악극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길면서 4부작 연속이라는 특이한 구성을 가진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일명 링 사이클)는'라인의 황금(Das Rheingold)','발퀴레', '지크프리트''신들의 황혼'이라는 독립된 4편의 오페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그너는 이 작품을 완성하는데 (대본과 음악을 모두 써야 했기 때문에) 2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오늘날 우리는 바그너의 '링 사이클'에서부터 총체예술, 악극(musik-drama)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음악칼럼니스트·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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