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문화가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지금 일본은 남녀노소 누구나 한국 음식을 맛있게 먹고, 가볍게 이웃 나라에 여행을 가는 시대이다. 나의 단골 음식점에도 소주와 한국요리를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로 항상 가득하다. 그들에게는 까다로운 한일 간의 정치나 역사 이야기는 화젯거리가 아니다. 단지 한국 음식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인 것뿐이다. 몇 년 전에 한류가 막 시작되었을 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이러한 분위기의 정상에는 친한파로 알려진 하토야마(鳩山) 내각이 자리하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의 부인 미유키(幸) 여사도 한류 팬으로 유명하다. 작년 도쿄에서 열린 '한일 교류 축제' 개회식에서 한국어로 인사를 해서 화제가 되었다. 신문 인터뷰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김치는 매일 먹는다"고 언급했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에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며 수상쩍어 하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올해 한일병합 100주년을 의식한 총리 부인의 친한 퍼포먼스가 아닌가 하는 한국의 의구심이다.
미유키 여사의 한국 문화 사랑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젊은 시절 가극 단원으로 무대에서 노래하며 춤을 추는 예능인이었다. 정치와는 아무 관계없는 삶을 살아 온 것이다. 세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그녀의 기묘한 발언에서도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오만함과 계산적인 모습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한국 연예인과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지도자가 이토록 한국 문화에 친근감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가 떠나지 않는 듯하다. 한국인은 '우리나라' 외에는 경계심이 강하고, 무엇이든지 정치나 역사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괜찮아'를 연발하지만, 정치나 역사와 관련되면 표정부터 달라진다. 그래서 일본의 한류에 대해서도 "왜 갑자기 한류가 일어났을까?" "왜 '겨울연가'가 인기를 끌었는가?"라고 걱정스럽게 묻는다. 일본인은 정치는 정치, 문화는 문화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갑자기 불기 시작한 한류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길 뿐이다.
양국의 사고 방식의 차이에는 역사와 지리적 조건도 관련되어 있다. 한국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늘 '우리 나라' '우리 문화'를 지켜야 했다. "'메이드 인 재팬'은 좋지만 일본은 싫다"는 말을 나는 한국에서 자주 들었다. 거리낌없이 일본을 받아들일 수 없는 한국인의 갈등이 느껴졌다. 섬나라 일본은 외부 문물을 바로 받아들여 자기의 정서에 맞게 변화시킨다. 일본을 서양적 근대국가로 바꾼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은 200년간의 쇄국주의를 거치면서 '밖'을 받아들여야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했다. 그 후 일본 정부는 구미 선진국의 제도와 기술을 들여와 '일본적 자본주의'를 창출했다. 국민들도 '문명개화'(文明開化)라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서양의 문화와 풍습을 모방하거나 일본문화와 융합시키며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1946년 시작된 페론 정권은 아르헨티나에서 일본 이주민의 사회적 지위를 높였다. 거기에는 일본에 친근감을 가진 에바 페론(별칭 에비타)의 존재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남편의 정치활동을 도우면서 "여성이 정치에 너무 관여한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민중으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었다. 에바 페론과 미유키 여사에게는 화려한 이미지와 타 문화에 대한 이해라는 닮은 점이 많다. 일본 퍼스트레이디의 한국 사랑이 하토야마 정권의 외교와 일본인의 마음을 친한적으로 기울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일본인들은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것은 한일관계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국경과 신분이라는 경계를 넘는다. 이런 감정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상대방의 '좋아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가까워진다. 한일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코야마 유카·일본 도호쿠 대학 박사과정 연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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