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가이 가즈마사 포스터전, 3월3일부터 경북대 미술관

태초의 땅같은 적막감…한마리 외로운 생명

#흑회색 바탕에 검은 점들이 원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어디일까. 태초의 땅 같기도 하고 지상 최후의 육지와도 같은 공간에 적막감이 감돈다. 화면 한 중앙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생물이 하얗게 도드라져 보인다. 대자연 속 한 마리 생명이 남겨진 것일까. 혹은 빈사 상태인 최후의 생물인 것일까. '세이브 네이처(SAVE NATURE)'라 이름붙은 이 몽환적인 분위기의 포스터는 일본 나가이 가즈마사의 작품이다.

나가이 가즈마사는 전후 일본의 대표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판화가로, 전후 일본 그래픽디자인을 주도한 인물이다. 나가이 가즈마사의 포스터전이 3월 3일부터 31일까지 경북대 미술관 1~3관에서 열린다.

나가이 가즈마사의 작품은 매우 다양하다. 때로는 '한 작가의 작품이 맞나' 의심하게 될 정도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말부터 다양한 그의 작품 가운데 100점을 전시한다. 생명 존중 사상이 깔린 동물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의 작품 속 동물은 때로는 사랑스럽거나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우수에 젖어 외롭거나 아이러니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불가사의하며 기괴한 이미지로 변형되기도 한다.

1997년 작 '세이브(SAVE)'는 불가사의한 우주의 신비를 곰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강렬한 붉은색은 우주의 힘을 나타내는 듯하다. 밝고 환한 곰의 이미지와 붉은 색의 대비가 이채롭다.

한편 '가장 일본적인' 이미지도 그의 작품 영역이다. 그는 일본 특유의 이미지를 화려하면서도 세련되게 그려내는 데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1987년 작 '재팬(JAPAN)'은 일본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금붕어와 동백을 함께 그려냈다. 둘 다 에도 시대에 관상용으로 인기를 얻어 교배를 거듭한 결과 일본인들은 더 새롭고 신기한 품종을 만들어냈다. 에도 시대의 감성은 현대 일본의 감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에는 세밀하면서도 상징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그 속에는 늘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은유가 담겨 있다.

덧붙이자면, 나가이 가즈마사가 그래픽 디자이너가 된 과정이 흥미롭다. 1920년대 후반 칠삭둥이로 태어난 그는 도쿄예술대 조각과에 입학해 조각에 입문한다. 하지만 유난히 허약한 그는 조각을 계속하지 못하고 그래픽디자이너로의 전향을 꿈꾸던 중 때마침 한 회사의 선전 업무를 맡는다. 이를 계기로 디자인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서고, 일본 그래픽 디자인의 흐름을 주도하게 된다. 그는 80세가 넘은 지금도 일본디자인센터에 남아 다양한 포스터와 판화, 심벌 마크 등을 제작하고 있다. 그는 "나의 디자인은 자연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법칙을 발견해 그것을 형상화해나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053)950-7968.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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